51장. 데이트 1
“장지우 씨 오늘 끝나고 할 일 없죠?”
“없죠.”
지우는 상을 훔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별다른 일이 있을 게 뭐가 있겠어요?”
“그럼 데이트 하죠.”
“네?”
지우는 순간 멈칫했다. 당황한 자신과 다르게 태식은 아무렇지도 않고 손님의 테이블에 음식을 놓고 있었다.
“그러니까.”
“말 그대로요.”
“아니.”
“할 거 없잖아요. 그럼 저랑 데이트나 하죠.”
태식은 이렇게 말하고 그대로 주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지우는 침을 꿀꺽 삼켰다. 저 사람이 지금 뭐라는 거야?
“장지우 씨.”
“네? 네.”
지우는 멍하니 밥을 먹다 정신을 차렸다. 태식이 미소를 지은 채로 자신을 응시하는 중이었다.
“그래서 뭘 하고 싶습니까?”
“뭐가요?”
“데이트하기로 했잖아요.”
“데이트요?”
지우보다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준재였다. 그런 준재의 반응에 태식은 씩 웃으며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내가 말했잖아. 나도 장지우 씨를 좋아한다고. 네가 말한 것처럼 장지우 씨는 누군가의 소유물이 아니니까 굳이 너에게 허락을 받을 이유는 없을 거 같아서. 내가 직접 물어봤어. 괜찮은 거지?”
“괜찮을 게 있겠어요?”
준재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푹 숙였다.
“사장님은 누구의 소유물도 아니니까요.”
“그렇지.”
태식은 손가락을 튕기고 검지로 지우를 가리켰다.
“그래서 뭘 할래요?”
“하기는 뭘 해요?”
“왜요?”
“됐어요.”
지우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런 식으로 자신을 갖고 노는 것 같은 상황이 유쾌하지 않았다.
“도대체 뭐 하자는 거예요?”
“뭐가 말입니까?”
“내가 지금 식구도 없고 아무도 없으니까 만만해서 그러는 거예요? 그게 도대체 무슨 말이에요?”
“무슨 말이냐뇨?”
태식은 지우의 말이 쉬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 미간을 모았다. 지우는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저었다.
“내가 그냥 평범한 집 딸이었으면 그렇게 말을 할 수가 있어요? 그냥 그렇게 데이트를 하자고?”
“네.”
“뭐라고요?”
“누구나 다 이러죠.”
태식은 억울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입을 내밀었다.
“아니 같이 일을 하는 사람에게 호감을 느껴서 같이 시간을 보내자고 하는 게 그렇게 문제가 되는 겁니까?”
“아니 그러니까.”
태식이 이렇게 나오자 당황스러운 것은 오히려 지우였다. 자신이 무슨 실수라도 한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러니까. 나는 그러니까. 주태식 씨가 도대체 왜 나 같은 여자를 좋아해요? 나는 못 생기고 뚱뚱하잖아요.”
“그렇죠.”
태식은 잠시도 망설이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뚱뚱한 여자를 싫어하고.”
“그래요.”
지우는 심호흡을 하고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아무 것도 아닌 척 웃으려고 했지만 그게 쉽지 않았다.
“됐어요.”
“저기.”
“됐다고요!”
지우는 그대로 고함을 지르고 주방으로 들어갔다 .태식은 멍한 표정을 지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도대체 왜 저러는 거야?”
“아저씨 정말 문제가 많은 거 알죠?”
“내가?”
“당연하죠.”
“내가 왜?”
“아니.”
준재는 무슨 말을 하려다가 고개를 저었다. 태식이 이렇게 나오는데 그가 무슨 말을 한다고 달라질 것은 없었다.
“그냥 사장님의 기분. 그거 하나만 더 생각을 하면 되는 거잖아요. 그게 그렇게도 어려운 거예요?”
“아니 그런 여자들을 싫어하는데 나는 장지우 씨를 좋아한다. 이렇게 말을 하려고 하는 건데. 도대체 왜 사람 말을 끝까지 듣지 않고 혼자서 저렇게 화를 내고 들어가면 어쩌라는 거야?”
“그런 식의 말을 듣고 좋아할 사람이 있을 거 같아요?”
“어?”
준재는 미간을 모은 채로 고개를 저었다.
“아저씨 그거 사장님을 좋아하는 거 맞아요? 너는 뚱뚱한데 내가 너는 좋아할 게. 그런 식의 말 아니에요?”
“그런 거 아니야.”
“그렇게 들려요.”
준재의 말에 태식은 침을 꿀꺽 삼켰다. 자신은 절대로 그런 의도로 꺼낸 말이 아니었다. 말도 안 되는 거였다.
“그러니까.”
“아저씨는 정말로 좋은 일을 한 거라고 하겠죠. 하지만 그거 좋은 거 아니에요. 사장님을 위한 게 아니라고요.”
“그러니까. 그게.”
태식은 아랫입술을 물고 고개를 저었다. 지우를 위해서 그냥 가볍게 분위기를 바꾸자고 한 거였다. 그런데 정작 자신의 말은 지우에게 이상하게 들린 모양이었다. 지우가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쪽으로.
“미치겠네.”
“아저씨를 보면 정말로 사장님을 좋아하는 건지 모르겠어요. 그냥 게임처럼. 그렇게 행동하는 거 같아요.”
“게임이라니.”
태식은 발끈하며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그런 거 아니야.”
“그런 게 아니면 잘 해야죠.”
“뭐?”
“아저씨는 잘 하지 않아요.”
“야. 꼬맹이.”
준재는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주방으로 들어갔다.
“도대체 뭘 어떻게 하라는 거야?”
태식은 자신의 머리를 마구 헝클면서 혀로 아랫입술을 훑었다.
“오늘 저녁 맛있네요.”
“애써 위로하지 않아도 돼.”
“진심인데요?”
지우는 고개를 들어 준재를 바라봤다. 준재는 어느 때나 짓는 그 표정처럼 밝은 표정을 지으며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사장님은 제가 하는 말에 대해서 그냥 듣지 않으시는 거 같아요. 나는 별 생각이 없이 하는 말인데.”
“내가 별로라서 그런 모양이지.”
“아니요.”
준재는 밝은 목소리로 대답하며 고개를 저었다.
“누가 사장님에게 별로라고 해요?”
“그걸 꼭 누가 말로 해줘야 아는 거 아니잖아. 그냥 알게 되는 경우도 있잖아. 그냥 어떤 상황인지 아는. 뭐 그런 거.”
“아니요.”
준재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지우의 앞에 서더니 아랫입술을 물고 살짝 숨을 토해내고 고개를 다시 한 번 저었다.
“사장님 사람이 제대로 말을 하지 않고 나서 아는 것은 없어요. 자신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혼자만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아무 도움이 되지 않아요. 말을 하지 않는데 혼자서 지레짐작할 이유 없어요.”
“너는 날씬해서 몰라.”
“나도 뚱뚱했었다고요. 배랑 허벅지랑 아직도 튼 살이 가득이에요. 그래서 저는 형진이랑 같이 목욕하는 것도 싫어했어요.”
준재는 어색하게 웃으며 목을 살짝 가다듬었다.
“그런데 형진에에게 그 얘기를 하니까 의아하게 생각하더라고요. 제가 그랬다는 것을 전혀 몰랐다고.”
“어?”
“그거 생각보다 중요한 거더라고요. 제가 다른 사람을 신경을 쓰는 것처럼 다른 사람은 나에게 관심이 없어요. 다른 사람들의 시선 같은 거. 전혀 중요하지 않아요. 다른 사람들이 뭐라고 하건 그건 의미가 있는 게 아니에요.”
“그건.”
준재의 말이 옳았다. 사람들은 자신에게 크게 신경이 없었다.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
“그렇겠지.”
“사장님은 좋은 사람이니까요.”
“아니.”
지우는 쓴웃음을 지은 채 고개를 저었다. 자신은 좋은 사람이 아니었다. 자신은 나쁜 사람이었다.
“나는 좋은 사람이 아니야.”
“왜요?”
“어?”
“왜 그렇게 생각을 하는 건데요?”
“그러니까.”
준재의 물음에 지우는 침을 꿀꺽 삼켰다. 자신은 왜 그렇게 생각을 하는 걸까? 왜 그렇게 느끼는 걸까?
“그게.”
“나랑 데이트해요.”
“어?”
지우의 눈이 커다래졌다. 태식의 말도 안 되는 수작을 넘겼다고 생각을 했더니 이번엔 준재인 모양이었다.
“뭐라는 거야?”
“왜요?”
“아니. 내가 왜?”
“내가 사장님을 좋아하니까요.”
“어?”
준재의 돌직구 고백에 지우는 그저 눈만 깜빡거릴 따름이었다. 준재는 미소를 지으며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아저씨랑 저는 갈게요. 내일 뵈요.”
“어? 어.”
지우는 더 이상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준재는 살짝 손을 들어보고 주방을 나갔다.
“도대체 뭐야?”
지우는 침을 꿀꺽 삼켰다.
“꼬맹이.”
“네?”
태식의 낮은 목소리에 준재는 긴장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태식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뭐가 문제일까?”
“네?”
“나는 말이야. 내가 잘 하고 있다고 생각을 하는데. 그러니까. 내가 아무 문제도 없다고. 아무튼 그렇게 믿고 있는데. 도대체. 도대체 뭐가 그렇게 문제인 건지 모르겠어. 도대체 왜 그런 걸까?”
“아저씨.”
“그러니까 나는 장난이 아니었거든.”
태식은 어색한 표정을 지은 채 숨을 내뱉었다.
“도대체 나는 왜 이 모양인 건지 모르겠다.”
“그래서 다행이죠.”
“뭐?”
“그래서 내가 사장님 곁에 있을 수 있으니까.”
준재의 말에 태식은 이리저리 목을 풀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준재의 말이 맞는 거였으니까.
“그래도 뭐. 지금 장지우 씨가 그렇게 힘을 내서 뭔가 할 수 있게 만든 사람은 나라는 걸 잊지 마.”
“뭐 그래도.”
“뭐가?”
“제가 있어서 가능한 거죠.”
“뭐래?”
“제가 아르바이트 하지 않았으면 안 된 거니까.”
준재는 씩 웃고 먼저 걸음을 옮겼다. 그런 준재를 보며 태식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당할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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