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장. 사과
“저기.”
“어?”
원희가 자신을 아무렇지도 않게 대하자 오히려 당황한 것은 아정이었다. 원희는 그대로 아정을 지나갔다.
“뭐야?”
“왜 그래?”
“아니.”
지수가 아정에게 다가와서 고개를 갸웃했다.
“전학생이 뭐라고 해?”
“아니. 안 그래.”
아정은 미소를 지은 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너무 안 그래.”
“어?”
“뭐라고 해야 하는 거 아니야?”
“그게 무슨 말이야?”
“아니.”
아정은 아랫입술을 꼭 물었다. 만일 원희가 자신에 대해서 무슨 생각이라도 한다면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하는 거였다.
“어떻게 저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나를 대할 수가 있는 거지? 나에게 화가 나거나 그랬을 거 같은데.”
“꼭 그걸 표현을 해야 하나?”
“그래도.”
아정은 볼을 잔뜩 부풀렸다.
“진짜 뭐야.”
“응?”
“아니 이상하잖아.”
아정은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입술을 꾹 다물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미간을 모았다.
“나를 가지고 장난을 치는 거 같잖아. 나에게 화를 내야 하는 거 아니야?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니야?”
“얘가 또 왜 이래?”
“사과하려고 마음을 먹었다고.”
아정은 자리에 우뚝 서서 볼을 부풀렸다.
“그런데.”
“윤아정.”
“그런데 왜 저래?”
아정은 자신도 모르게 눈에 눈물이 차오르자 당황해서 손등으로 훔쳤다. 그런데 자꾸만 눈물이 후두둑 떨어졌다. 지수가 놀라서 아정을 꼭 안고 길가로 이끌었다. 아정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도대체 뭐야?”
“윤아정 너 왜 그래?”
“그러니까.”
아정은 아랫입술을 세게 물고 고개를 저었다. 지금 자신의 감정이 무엇인지. 자신이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너무 어려웠다.
“이게 뭐야?”
“왜 그래?”
“힘들어.”
아정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런 이야기를 지수에게 한다는 것 자체가 너무 이상한 일이었지만 지수가 아니고서는 말을 할 사람도 없었다.
“적어도 내가 뭐라고 사과를 할 시간은 줘야 하는 거 아니야?”
“뭐.”
“이지수.”
“사실이잖아.”
지수는 볼을 부풀린 채 고개를 저었다.
“됐어.”
지수는 먼저 걸어가는 아정을 보며 한숨을 토해냈다.
“야. 윤아정 같이 가!”
지수는 재빨리 아정의 뒤를 쫓았다.
“저기 별 일은 없니?”
“없습니다.”
원희의 대답에 은선은 어색하게 미소를 지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라도 무슨 일이 있으면 나에게 바로 말해줘. 아무래도 다른 애들도 이제 고3이라서 신경을 써야 하는 게 많아서. 선생님이 원희 너만 신경을 써줄 수도 없거든. 그러니까 무슨 일이 있으면 바로 말해줘.”
“네. 그럴게요.”
“약속하지?”
“네. 약속할게요.”
은선이 채근하자 원희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은선은 여전히 걱정이 가득한 눈으로 원희를 바라봤다.
“그래서 분위기를 잡아달라고?”
“어.”
“잘 모르겠다.”
지수의 부탁에 지석은 미간을 모은 채 고개를 저었다.
“그런 거 자체가 이상한 거잖아. 우리가 이러는 거 알면 원희가 더 싫어할 거라는 생각이 드는데.”
“그러니까 너에게 묻는 거잖아. 도와달라고 이렇게 부탁도 하는 거고. 그래도 네가 친구인데 좀 안 돼?”
“안 돼.”
지석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지수가 부탁하는 일이라고 해도 이건 원희를 놀리는 것과 차이가 없었다.
“아니. 윤아정은 자기가 직접 가서 사과를 하면 되는 거잖아. 그런데 왜 우리가 분위기를 잡아달라고 하는 건데?”
“아침에 원희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고 하잖아. 그런데 그 상황에서 갑자기 사과를 하라고?”
“당연하지.”
“그게 쉬워?”
“아니.”
지석은 미간을 모은 채 고개를 흔들었다.
“어려워.”
“그런데 못 도와?”
“사과니까.”
“뭐?”
“사과는 원래 그런 거야.”
지석의 대답에 지수는 침을 꿀꺽 삼켰다. 지석은 짧은 한숨을 토해낸 후 헛기침을 하고 어색하게 웃었다.
“알아. 이지수. 네가 나를 얼마나 멍청하게 보고 지금 마뜩찮게 생각을 하는 건지도 알고 있어.”
“알아? 아는데 이래?”
“응. 아는데 이래.”
지석은 힘을 주어 대답했다. 지수는 평소와 다른 지석의 모습이 어색한 표정을 지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됐어. 그럼.”
“너도 그만 둬.”
“뭘?”
“윤아정이 해야 하는 거야.”
지수는 물끄러미 지석을 응시했다. 평소와 다르게 유난히 말을 잘 하는 그를 보니 묘한 기분이 들었다.
“너 이원희 정말로 좋아하는구나?”
“어?”
“보여.”
지수의 말에 지석은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
“그래.”
지수는 심호흡을 하고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분위기라는 게 혼자 잡는다고 되는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지석의 말처럼 그런 분위기를 만든다는 것 자체도 너무 이상할 수 있었다.
“아정이에게는 내가 말할게.”
“알았어.”
지수는 짧게 눈인사를 건네고 돌아섰다. 지석은 괜히 후회 같은 것이 밀려와서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흔들고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그냥 해준다고 할 걸 그랬나?”
지수와 더 친해질 수 있는 기회를 날려버린 기분이었다. 하지만 원희를 생각한다면 이게 당연한 거였다. 지석은 목을 가다듬은 후 고개를 끄덕였다.
“나 못 해.”
“그럼 안 하는 거지.”
“뭐?”
지수의 말에 아정은 입술을 쭉 내밀었다.
“그게 말이 되니?”
아정은 하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숙였다.
“나 정말로 원희에게 사과 하고 싶어.”
“그러면 그냥 하면 되는 거잖아.”
“아니.”
아정은 아랫입술을 잘근잘근 물었다.
“그거 이상하잖아.”
“뭐가?”
“그러니까.”
아정은 지금 자신의 감정을 지수에게 그대로 말을 하지 못해서 너무 답답했다. 하지만 그대로 사과를 할 수는 없는 거였다. 그럴 거였다면 아침에 만났을 때 바로 하는 편이 가장 나았을 거였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모르겠어. 어제 그렇게 화를 냈으면 내가 무슨 반응을 보여야 하는 거 아니야?”
“솔직히 원희 입장에서는 다른 반응을 더 보이는 것도 이상한 거 아닌가? 네가 뭐라고 할 줄 알고?”
“어?”
“애매하잖아.”
“그런가?”
아정은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그리고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모두 다 자신이 만든 문제였으니 누굴 원망할 수도 없었다.
“나 좀 말리지.”
“뭘?”
“때려서라도.”
“그런다고 들어?”
“아니.”
지수는 웃음을 터뜨리며 고개를 저었다.
“밥 먹을 때 내가 물을까?”
“어?”
“그럼 좀 낫잖아.”
“뭐.”
지수는 아랫입술을 물고 있다가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아니었다. 지석의 말처럼 그건 너무 이상했다.
“아니다. 네가 해야 해.”
“갑자기 왜 그래?”
“너 전학생 좋다며?”
“좋지.”
“그럼 직접 해.”
지수의 말에 아정은 눈을 빤히 응시했다. 그리고 어색한 표정을 짓다가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어?”
“그렇게 할게.”
지수는 밝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래야 내 친구지.”
“미안해.”
아정의 갑작스러운 사과에 밥을 뜨던 원희가 고개를 들었다. 아정은 원희를 물끄러미 응시한 채 고개를 숙였다.
“미안해.”
“아니.”
“그런 식으로 말하면 안 되는 거였어. 네 기분이 어떨지. 네가 무슨 생각을 할지. 그런 거 전혀 몰랐어.”
“아니야.”
원희는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미소를 짓다가 표정을 지웠다.
“다시 안 그러면 되는 거야.”
“나는 왜 이럴까?”
아정의 투정에 원희는 다시 한 번 고개를 저었다.
“고마워.”
“어?”
아정이 놀라서 고개를 들었다.
“뭐가?”
“사과를 해줘서.”
“아니.”
“고마워.”
원희는 다시 인사를 하고 씩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정은 씩 웃으면서 혀를 살짝 내밀고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너 멋있어. 내가 좋아할 만한 남자야.”
“어?”
“이원희. 너 내가 좋아해.”
아정의 갑작스러운 고백에 지수는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식당의 모든 사람들이 자신을 바라봤지만 아정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연신 싱글벙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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