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장. 혼란 1
“뭐야?”
상유의 눈이 커다래졌다.
“결국 왔네.”
“뭐?”
아름의 말에 상유의 얼굴이 굳었다.
“누나.”
“내가 한 거야.”
아름은 이마를 꾹꾹 문질렀다. 상유는 침을 꿀꺽 삼켰다. 아름은 그런 상유를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눈으로 응시했다.
“왜 그러는 거야?”
“아니.”
상유는 주먹을 세게 쥐었다. 말도 안 되는 거였다.
“이제 막 그 사람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건지 설명을 하고 있는 중인데. 이게 지금 무슨 일인 건지 말을 해주고 있는데. 이렇게 갑자기 오게 되면. 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할 거 같습니까?”
상유의 말에 아름은 관자놀이를 문질렀다.
“그걸 내가 신경을 써야 하니?”
“무슨 말이 그래요?”
상유는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말도 안 되는 거였다. 이런 식으로 기연을 놓고 올 수는 없는 거였다.
“그 사람이 지금 얼마나 혼란을 겪고 있을지. 그 사람이 지금 얼마나 아파하고 있을지 모르시는 건가요?”
“몰라.”
아름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궁금하지도 않아.”
“뭐?”
상유는 침을 꿀꺽 삼켰다. 머리가 왕왕 울리는 기분이었다. 날개를 펴서 이곳을 피하려고 했지만 불가능했다.
“젠장.”
“천사가 욕은.”
아름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리고 물끄러미 상유를 응시하다가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너 여기에 있어야 해.”
“왜요?”
“왜라니?”
“무슨.”
상유는 멍한 표정을 지었다. 말도 안 되는 거였다. 절대로 이곳을 떠날 수 없었다. 떠나면 안 되는 거였다.
“그 사람은 혼자 있으면 안 돼.”
“왜?”
“외로우니까.”
“외로워?”
아름은 코웃음을 치고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아랫입술을 세게 물고 상유를 원망스러운 눈으로 노려봤다.
“너 때문에 내가 뭘 해야 하는 건지 알아? 너로 인해서 내가 어떤 희생을 하고 있는 건지 알아?”
“누나.”
“나 여기에서 곤란해.”
“그러니 그냥 나를 보내요.”
“그건 안 돼.”
“왜?”
상유는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상유는 깊은 한숨을 토해내면서 바닥을 주먹을 세게 쥐었다.
“그 사람을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거 할 거야.”
“너 천사야.”
“나를 거기에 보낸 건 이곳이야.”
“그래도.”
“그런데 이제 와서.”
상유의 등에서 갑자기 빛이 생겨났다. 그 순간 갑자기 걸음 소리가 들렸다. 상유는 고개를 들었다.
“선배.”
“권선재.”
상유는 주먹을 쥐고 앞으로 달려나갔다. 선재는 여유롭게 그것을 피하고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뭐 하는 거야?”
“너 도대체!”
상유는 고함을 질렀다.
“무슨 짓을 하려는 거야!”
“내가 뭘 하는 거 같은데?”
“뭐?”
“내가 뭘 하고 싶은 거 같은데?”
“그게 무슨?”
상유는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말도 안 되는 거였다. 자신을 그저 장난감처럼 다루는 기분이었다.
“너로 인해서 지금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지 알아? 지금 네가 하는 일이 어떤 건지 알아?”
“알아요.”
선재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형이니까 그 모든 걸 견딜 수 있는 거죠. 형이니까 그 모든 걸 이해할 수 있는 거고.”
“이해라니.”
상유는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자신은 그 무엇도 지금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지금 이 상황이 전혀 이해가 안 가고 있었다. 머리가 지끈거리고 욕지기가 치밀었다. 이건 너무나도 끔찍한 일이었다.
“너로 인해서 지금 둘이 힘들어.”
“알고 있습니다.”
선재는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턱을 긁적였다. 그리고 한숨을 토해내고 눈을 감았다가 뜨고 엷은 미소를 지었다.
“아래에서 배운 게 없어요?”
“뭐?”
“형이 배워야 하는 거.”
“무슨 말이야?”
“거의 다 된 거 같은데.”
선재의 알 수 없는 말에 상유는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결국 저 위는 그저 목적으로 인해서 이런 짓을 한 거였다.
“나를 가지고 무슨 짓을 하는 거지?”
“천사가 해야 하는 일.”
“뭐?”
“천사라서 해야 하는 거.”
“그런 건 없어.”
상유가 다시 나서려고 하자 아름이 끼어들었다. 아름은 그 어느 때보다 진지한 표정으로 상유를 내려보았다.
“박상유.”
“누나.”
“너 아직 천사야. 그리고 너 같은 평천사들을 관리하는 일은 내가 하는 거고. 그리고 정기연 그 사람 행복해졌어.”
“뭐?”
“행복해졌다고.”
아름이 행복측정기를 들이밀었다. 정말로 행복해졌다. 그 행복하다는 지수에 상유는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니까.”
“네가 할 일을 다 한 거지.”
“젠장.”
낮게 욕설을 내뱉었다. 말도 안 되는 거였다. 이 순간. 자신이 가장 있어야 하는 순간에 기연이 행복해졌다는 거. 말도 안 되는 거였다. 그러면 안 되는 거였는데. 그럴 수 없는 거였는데.
“내가 떠나고 나서 그 사람이 얼마나 불행해질지 알고 있습니까? 그 사람이 얼마나 행복해하지 않을지 알고 있어요?”
“그런 건 우리가 따질 일이 아니잖아.”
“아니.”
상유는 허탈했다.
“그게 뭐야?”
말도 안 되는 거였다. 그 사람이 다시 불행해질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그걸 아무 신경도 쓰지 않는 거였다.
“누군가가 아파할 수 있다는 거. 힘들어할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지금 그냥 넘어가는 거라고요?”
“응.”
“말도 안 돼.”
상유는 허무하게 웃었다. 그리고 한숨을 토해내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아랫입술을 잘근잘근 물었다.
“끔찍하다.”
“그래.”
아름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우리의 일이야.”
“뭐라고요?”
“어쩔 수 없는 거잖아. 천사가 사는 방식이 이런 거라는 걸 알아야지. 이런 식으로라도 인간들 곁에 있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건데. 인간들 옆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을 해야 하는 거니까.”
“아니.”
상유는 고개를 푹 숙였다. 아무리 말을 들으려고 해도 대화가 되지 않았다. 머리에서 같은 말들이 맴돌았다.
“정말.”
상유는 눈을 감았다. 금방이라도 토할 거 같은 기분이었다. 이 모든 역겨움을 달랠 방법이 없었다.
“아직도 미련을 갖는 거예요?”
“그래.”
선재는 혀를 차며 상유를 응시했다.
“왜 그래요?”
“이런 식은 아니니까.”
“아니라니.”
선재는 기지개를 켜며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검지로 턱을 긁적이면서 엷은 미소를 지은 채 고개를 저었다.
“선배는 지금 천사가 해야 하는 일을 제대로 한 거예요. 천사가 해야 하는 일을 한 거라고요.”
“그래도 이건 아니야.”
상유는 아랫입술을 세게 문 채로 고개를 저었다. 이렇게 도망이라도 치는 거서럼 사라지면 안 되는 거였다.
“나로 인해서 남겨진 그 사람이 얼마나 아플지 알고 있는데. 얼마나 숨이 막힐지 알고 있는데. 그냥 이런 식으로 혼자서 천계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지내라는 게. 지금 이게 말이 된다는 거야?”
“네.”
선재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선재의 대답에 상유는 허. 하는 한숨을 토해냈다. 말이 안 통하는 상대였다.
“이상해.”
“뭐가요?”
“너로 인해서 다들 힘들고 지칠 수 있어.”
“알아요.”
선재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고 해서 이 모든 것을 다시 처음으로 돌리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제가 지금 해야 하는 일을 하려고 하는 거였고. 제가 신으로 형을 지켜줄 수 있는 마지막 일이고요.”
“나를 지켜?”
상유는 코웃음을 쳤다.
“너는 나를 지키지 않았어.”
“지금 내가 하는 모든 일이 다 선배를 지키는 일들이에요. 선배를 위해서 하는 일들이라는 걸 알아야죠.”
“나를 위한 거?”
상유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자신은 지켜지지 않았다. 자신은 지켜진 적이 없었다. 자신은 망가졌다.
“이 천계에서 나를 내버린 건 결국 너였어. 결국 모든 천사들이었어. 그러고 지금 나를 위해서 그랬다는 말. 그 말 자체가 너무 이상한 거 아니야? 그거 너무 끔찍하고 우스운 말인 거잖아.”
“왜 우스운 건데요?”
선재는 입술을 쭉 내밀었다.
“선배는 어차피 징계였어요. 그리고 그 여자를 사랑해서. 그 여자가 행복할 수 있게 해준 거죠.”
“그 악마는 뭐지?”
“뭐.”
선재는 가볍게 테이블을 손가락으로 두드렸다.
“장난?”
“뭐?”
“여기에서 할 수 있는 일?”
선재는 어꺠를 으쓱했다.
“형을 위한 것은 더 이상 할 수 없어요.”
상유는 선재를 물끄러미 보다가 얼굴이 굳었다. 앙상한 날개. 자신의 날개와 같은 날개. 상유는 침을 꿀꺽 삼켰다.
“그건.”
“나도 버려진 신이니까.”
상유는 한숨을 토해냈다. 머리가 왕왕 울리는 기분이었다. 그런 끔찍하고 괴로운 기분. 그 모든 것을 다 잊고 싶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그 모든 말들을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선재는 상유를 보고 무슨 말을 더 하려고 입술을 달싹이다가 사라졌다. 상유는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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