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장. 이별
“미안합니다.”
“아니에요.”
기연은 미소를 지은 채 고개를 저었다. 신분증이 없는 상유 탓에 부산이 가장 멀리 가는 거였지만 그래도 충분했다.
“그래도 이렇게 같이 시간을 보낸다는 것. 이것만으로도 의미가 있고 이게 정말로 중요한 거죠.”
“억지로 그렇게 생각을 하는 건 아니고요?”
“들켰나?”
기연의 능청스러운 대답에 상유는 웃음을 터뜨렸다.
“하여간.”
“왜요?”
“아닙니다.”
상유는 헛기침을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좋네요.”
“신기하죠?”
“네. 신기합니다.”
이렇게 기차에 타고 있다는 것. 그리고 누군가의 곁에 있다는 것. 이것만으로도 뭔가 특별한 일을 하고 있는 기분이었다.
“좋다.”
부산은 공기 자체가 달랐다. 약간의 수분을 가지고 있는 느낌? 그리고 넓은 광장이 맞이하는 것만 보더라도 좋았다.
“그냥 보고만 있을 건가요?”
“네?”
“얼른 가죠.”
상유가 손을 내밀었다. 기연은 그 손을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밝게 웃고는 손을 잡고 고개를 끄덕였다.
“호텔 너무 좋은 거 아니에요?”
“그러게요.”
창가에 선 기연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사장님이 해준 건데.”
“왜 이런답니까?”
“직원 복지라고 하더라고요.”
기연의 대답에 상유는 살짝 인상을 구겼다.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이게 인간들 사이에서 있는 일 같았다.
“혹시.”
“혹시 뭐요?”
“정기연 씨를 좋아하는 거 아닙니까?”
“네?”
기연은 잠시 멍하니 있다가 이내 손뼉까지 치며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눈가에 눈물을 닦아내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그걸 정기연 씨가 어떻게 압니까?”
“아닌 걸 아니까요.”
“아니 그건.”
“정말로 아니에요.”
기연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살짝 기침을 하고 나서 인상을 구기고 입술을 쭉 냄리었다.
“사장님이 얼마나 좋은 분인데요. 괜히 박상유 씨 때문에 내가 눈치가 보여서 얼마나 힘들었는데.”
“그게 무슨 말입니까?”
“뭔가 이상하다고 했다고요.”
“나를요?”
“당연하죠.”
상유는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뭔가 묘한 인간이라는 기분이 들기는 했지만 그래도 이럴 줄이야.
“그건. 그러니까.”
“아무 문제도 없었으니까 그냥 넘어가죠?”
기연의 대답에 상유는 입술을 쭉 내밀었다. 그리고 살짝 헛기침을 하고 나서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지금 여기에 우리 둘이 온 건데 여기에 있지도 않은 사람의 이야기를 하는 건 낭비잖아요. 안 그래요?”
“그렇군요.”
상유는 싱긋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가만히 기연을 뒤에서 안았다. 기연은 상유의 체온을 고스란히 느꼈다.
“좋다.”
“나도 좋습니다.”
둘은 그렇게 한참이나 가만히 서로의 체온을 느끼며 밖을 쳐다봤다.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 둘에게 필요했다.
“여기가 바로 그 해운대군요.”
“뭔가 되게 이상한 어투로 말하는 거 같아.”
“그래요?”
“그럼요.”
기연은 주위의 눈치를 살피더니 고개를 저었다. 괜히 다른 사람이 본다면 이상하게 생각할 수도 있을 거였다.
“누가 보더라도 박상유 씨는 한국 사람인데. 그렇게 말을 하면 뭔가 수상한 사람이라고 생각을 할 거라고요.”
“아무도 안 그럴 겁니다.”
“나부터가 그렇게 생각을 하는데 다른 사람들이 안 그럴 거라고 그냥 넘어갈 거라고 생각해요?”
기연의 말에 상유는 잠시 멍하니 있다가 웃음을 터뜨렸다. 기연은 밉지 않게 눈을 흘기고 그대로 앉았다.
“상유 씨도 앉아요.”
“모래잖아요?”
“그런데요?”
“아니.”
더러울 거다.
“여기에 뭐가 있는 줄 알고.”
“에이.”
기연은 상유의 손을 잡아끌었다.
“그러지 말고.”
“이러다가 무슨 병이라도 걸릴지 모릅니다.”
“천사가 병에 걸릴 리는 없잖아요?”
“나 말고 정기연 씨요.”
“나도 괜찮아요.”
기연은 자신의 팔을 두드리며 씩 웃었다.
“건강해요.”
“그건 그렇지만.”
기연의 여전히 의기양양한 표정을 보며 상유는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엷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밤에 이렇게 걷는 게 좋군요.”
“그렇죠? 바닷소리도 들리고.”
“그러게요.”
기연의 말이 옳았다. 바닷소리를 들으면서 가만히 길을 거닌다는 것. 이것 자체가 특별한 경험이었다.
“부산 사람들이 부럽습니다.”
“왜요?”
“이런 특별한 일상을 맞이하고 있으니까요.”
“다들 그렇게 생각을 하려나.”
“네?”
“아니요.”
기연은 가볍게 어깨를 으쓱하고는 혀를 살짝 내밀었다.
“보통은 자기가 사는 곳에 대해서 그렇게 자주 다니고 하지 않으니까. 우리 아직 남산타워도 안 가봤잖아요. 안 그래요?”
“아.”
“아라니.”
기연은 입술을 쭉 내밀었다. 그리고 상유에게 손을 내밀었다. 상유는 기연의 눈을 보고 밝게 웃었다.
“그럼 우리 서울로 돌아가면 바로 남산부터 가봐야겠습니다. 그곳에 도대체 뭐가 있는 것인지.”
“거기에 타워가 있고 사람이 있고.”
“아니요.”
기연이 계속 말을 하려고 하자 상유는 고개를 저었다.
“우리 둘이 확인을 해야 합니다.”
“그건.”
“그래야만 합니다.”
“뭐.”
기연은 어색하게 웃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그 시간. 그 모든 것들을 둘이 확인해야만 하는 거였다.
“남편이 예쁘게 생깄네.”
“아. 저기.”
“고맙습니다.”
식당 주인의 말에 기연이 멋쩍게 답하려고 하자 상유가 먼저 나서서 넉살도 좋게 대답했다. 기연은 가볍게 상유의 옆구리를 찔렀다.
“남편도 아니면서.”
“뭐 그렇게 생각을 하면 되는 거죠?”
“아니죠.”
기연은 검지를 들고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왜 그렇게 생각을 해요?”
“에?”
“박상유 씨가 나에게 결혼하자는 이야기를 한 것도 아니고 말이죠. 우리 둘 결혼 이야기는 아닌 거 같은데.”
“윽.”
상유는 가슴을 움켜쥐고 울상을 지었다.
“억울해요.”
“뭐가요?”
“그건 아니죠.”
“왜요?”
“아니.”
상유의 반응에 기연은 어깨를 으쓱했다.
“아무튼 나는 제대로 청혼도 받지 않고 그런 식으로 대충 넘어가고 그런 거 정말 용납할 수가 없다고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거라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두 사람은 아이처럼 밝게 웃으면서 장난스럽게 대답했다.
“그러니 제대로 해요.”
“뭐.”
상유는 손바닥을 허벅지에 문지르고 씩 웃었다.
“결혼할래요?”
“에이.”
기연은 눈을 흘겼다.
“그게 뭐야?”
“그럼요?”
“더 진지하게 해야지.”
“그게 뭔데요?”
“그러니까.”
기연은 입술을 쭉 내밀었다. 자신도 결혼에 대해서 그렇게 진지하게 생각을 해본 적이 없어서 이 순간에 무슨 말을 해야 하는 건지 답이 나오지 않았다. 상유는 머리를 긁적이다가 해맑게 웃었다.
“무릎이라도 끓을까요?”
“네?”
“방송에서 그러던데?”
“아니요.”
기연은 주위 눈치를 살피며 고개를 저었다.
“싫어요.”
“왜요?”
“창피해.”
“뭐가요?”
“다.”
“아니.”
상유는 턱을 긁적였다. 기연의 반응을 보니 도대체 뭘 해야 하는 건지 갈피가 잡히지 않았다.
“그럼 뭘 하라는 겁니까?”
“행복 측정기를 주세요.”
“네?”
기연의 말에 상유의 얼굴이 굳었다. 농담인가 싶었는데 기연의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도 단호했다.
“정기연 씨.”
“당신에게 먼저 자유를 줄게요.”
“하지만.”
“소원이야.”
기연의 말에 상유의 눈이 커다래졌다.
“정기연 씨.”
“박상유 씨는 내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서 온 거라고 했죠? 그러니까 내 소원을 놓고 계약을 한 거잖아요?”
“그건.”
“이게 내 소원이야.”
상유는 침을 꿀꺽 삼켰다. 기연은 밝은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상유를 향해서 팔을 벌렸고 상유는 한 발 다가섰다. 기연은 상유를 한 번 꽉 안고 눈을 마주한 후 손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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