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진짜로 민간인이구나.”
기지개를 켜며 상현은 유쾌하게 미소를 지었다. 보통 군대에서 제대를 하고 나면 군대에 다시 가는 꿈을 꾼다고 하는데 집에 오자마자 너무나도 개운하게 잠을 잤다. 기지개를 켜고 커튼을 여니 비슷하게 생긴 다세대 주택들이 상현을 반겼다. 집이구나. 상현은 배를 문지르며 밖으로 나갔다. 식탁을 보니 엄마의 쪽지와 함께 간단한 식사가 차려져 있었다. 대충 맨손으로 반찬 몇 개를 집어 먹은 후 찬장에서 넓은 접시 하나를 꺼내서 반찬들을 담은 후 밥공기와 함께 컴퓨터 책상으로 들고 왔다.
“이제 컴퓨터 좀 해보실까?”
컴퓨터를 이것저것 만지기는 했지만 어색했다. 밖에 나오면 이것저것 하고 싶은 것이 많았는데 딱히 하고 싶은 것도 없었다. 게다가 군대를 다소 이르게 간 탓에 친구 녀석들도 여전히 군대에 있어서 더욱 심심했다.
“잘 지내려나?”
상현은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리면서 아랫입술을 물었다. 군대에 가는 그를 기다린다고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상현에게 있어서 첫 여자였던 은비가 조금은 그리워졌다. 상현은 망설이다 전화기를 들었다. 그리고 심호흡을 한 번 하고 애써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달라질 건 없었다. 그리고 통화 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나야 상현이.”
‘제대 한 거야?’
“응.”
은비는 잠시 말이 없었다. 괜히 전화를 한 것일까 상현은 망설여졌지만 그래도 은비의 목소리를 들으니 기분이 나쁘지만은 않았다.
“잘 지냈어?”
‘나야 그냥 그랬지. 너 몸은 어때?’
“더 좋아졌지.”
‘그래. 다행이다.’
어색했다. 하지만 은비의 목소리를 들으니 반가운 것도 사실이었다. 은비는 전화를 끊기를 바라는 눈치였지만 그래도 이렇게 오랜만에 은비와 통화를 하는 것을 쉽게 끊고 쉽지 않았다.
“우리 만날래?”
‘둘이서?’
“응. 그냥 얼굴도 볼 겸해서.”
은비는 잠시 머뭇거렸다. 그럴 것이다. 헤어진 남자 친구와 다시 만나는 것은 누구도 즐겁지 않은 일일 것이다. 특히나 서로를 위해서 헤어지고 많은 이야기를 나눈 상태에서 헤어진 것이 아니라 군대에 간 사이에 은비가 일방적으로 헤어지자고 이야기를 한 것이기에 더욱 어색하고 미안할 터였다.
‘그럼 커피라도 마실래?’
“밥 사주라.”
‘밥?’
“우리 사이에 그 정도는 해줄 수 있잖아.”
‘알았어. 조금 있다 부천역에서 보자.’
“응. 먼저 끊어. 자세한 건 톡할게.”
전화를 끊고 상현은 짧게 심호흡을 했다. 마음이 무거웠다. 그래도 이상한 것이 은비의 얼굴도 보고 싶었다. 일말상초. 일병 말부터 상병 초 정도가 되면 연인과 헤어진다는 말이 자신과는 다를 줄 알았다. 하지만 은비 역시 그것을 넘기지 못했고 정말 원망스러웠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은비가 이해가 갔다. 여덟 살이나 어린 자신과 미래를 꿈꾸기는 버거울 것이 분명했다.
“그래도 그런 식으로 헤어지냐.”
섭섭한 것은 사실이었다. 그래도 이해는 갔다. 분명히 두 사람은 어울릴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술자리에서 시작이 된 가벼운 내기만 아니었더라도 두 사람이 인연이 될 이유는 없었을 테니까.
“아우, 모르겠다.”
상현은 그대로 침대에 누웠다. 게임이라도 하려고 했지만 은비와 통화를 하니 그 마저도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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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는 왜 전화를 해서.”
은비는 가만히 아랫입술을 물었다. 상현이 돌아왔다는 사실은 분명히 반가운 사실이었다. 아무리 헤어진 사이라고 할지라도 함께 연애를 했고, 잠도 잤던 사이고. 또 정말로 사랑했던 사람이었으니까. 하지만 군대에 가고 여덟 살 어린 남자와 미래를 꿈꾸기 어렵다는 생각 이후로 억지로라도 정을 뗐다.
“그렇게 힘들게 잊었는데.”
은비는 입을 내밀고 무릎을 안았다. 마음이 허했다.
“김상현 자리가 이렇게 큰 지도 몰랐네.”
신입생이었던 상현과 일 년이 조금 넘는 기간을 연애했다. 그리고 군대에 가 있는 동안이 반 년 정도, 그리고 헤어진 지 일 년 반이 넘었다. 삼 년이라는 시간 동안 상현은 은비의 삶속에 있었다. 지우고 싶어도 쉽게 지울 수 없었다. 더욱 깊이 생각이 나는 이유는 그가 여덟 살이나 어리다는 사실이었다.
“내가 미쳤지. 아무리 남자를 굶었어도 그렇게 어린 아이에게 손을 대서는 안 되었던 건데. 말도 안 돼. 미쳤지. 미쳤어.”
이렇게 생각을 하는 도중에도 상현과의 섹스가 생각이 나는 자신은 미쳐도 단단히 미친 거였다.
“그래 조은비 정신 차리자. 스물여덟. 그래 잠시 장난을 칠 수 있어. 하지만 이제 서른하나잖아. 아이스크림 가게에서도 골라 먹을 수 있다고 하는 그 나이라고. 하지만 나는 내 인생 중 그 무엇을 골라잡아도 민트 맛이 나는 구린 삶일 뿐이잖아. 그래 이제 이런 거 그만하고 정신을 차리자.”
미안한 것은 미안한 것이었지만 그래도 잊어야 맞는 거였다. 아무리 미안하더라도 잊어야 맞는 거였다.
“그래. 그냥 좋은 후배니까. 그래. 우리 학교 후배인 것도 맞으니까. 후배로만 상현이를 보자.”
하지만 아무리 생각을 해도 상현이의 얼굴을 다시 보면 단순히 후배로만 보일 것 같지는 않았다.
“나 정말 어떻게 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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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어디 나가게?”
“응.”
“어디?”
승현은 의아하다는 눈으로 상현을 바라봤다. 친구들도 만날 수가 없다고 투정을 부리던 것이 바로 어제였는데.
“누구를 만난다는 것인데?”
“그냥 그런 사람이 있어요.”
옷까지 깔끔하게 차려 입은 것을 보고 승현은 미소를 지었다. 그래도 아들이 연애를 시작하는 건가?
“엄마가 돈 좀 줄까?”
“나 돈 있어요.”
“그래도.”
승현은 재빨리 지갑을 꺼내서 아들 주머니에 신사임당 한 분을 재빨리 넣어주었다. 상현은 괜찮다면서도 밝게 미소를 지었다.
“빨리 파트타임 구할게요.”
“파트타임은 무슨. 그냥 복학할 때까지 푹 쉬어. 복학하는 날도 얼마 남지 않았으면서 무슨.”
“그래도. 요즘 집에서 노는 대학생이 어디에 있어? 아무튼. 어쩌면 조금 늦을 지도 몰라요. 기다리지 마세요.”
“그래. 조심해서 다녀오고. 차 조심하고.”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아들은 어린 아이와도 같았다. 상현이 멀리 사라지는 것을 보고서야 승현은 문을 닫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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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음.”
카페 안은 꽤나 사람이 많았다. 이전보다 카페가 많아져서 카페를 찾는 것도 고민이었다. 늘 가던 카페가 있었는데도 이상하게 브랜드 카페가 많이 생기는 바람에 한 번에 찾지 못했다. 마침 종이 울리고 운비가 들어왔다.
“누나, 여기.”
“어. 상현아.”
은비가 어색한 표정을 지으면서 상현에게로 다가왔다. 두 사람은 어색한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봤다.
“오랜만이야.”
“오랜만이네.”
“뭐 마실래? 내가 살게.”
“아니야.”
은비는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 이제 막 제대를 한 상현에게 돈이 제대로 있을 리가 없었다. 그런 은비의 행동에 무안했는지 상현은 재빨리 손을 거두었다. 은비는 자리에서 일어나 음료를 받아왔다.
“어떻게 지내?”
“그냥 이것저것 일을 하면서.”
“힘들지는 않아?”
“다들 일을 하는 걸 뭐.”
“회사는 어디야?”
“아, 그런 건 아니고.”
은비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면서 가만히 컵을 만졌다. 진작 번듯한 곳에 취업을 했어야 하는 건데.
“그냥 커피숍에서 아르바이트 하고 있어.”
“누나가 왜?”
“내가 뭐?”
“누나 공부 잘 했잖아.”
“내가 무슨.”
은비는 엷은 미소를 지으면서 고개를 흔들었다. 사회는 공부와는 크게 상관이 있는 곳은 아니었다. 특히나 국어국문학과를 졸업을 한 은비가 제대로 설 수 있는 곳은 학원 말고는 없었다. 그나마 잠시 다니던 학원 역시 은비의 불 같은 성격 때문에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뭐 그래도 후회는 없었으니까.
“취업 준비는 하고 있는 거야?”
“아니. 왜?”
“누나 그냥 그렇게 살려고?”
“내가 뭐?”
상현의 말에 은비는 미간을 모았다. 좋게 상현을 보려고 했지만 상현 말의 수위가 다소 높았다.
“내가 사는 것이 뭐가 어때서?”
“그래도 누나 학교 다닐 때 그 정도 성적이었으면 지금 파트타임 같은 것을 하지는 말아야지.”
“네가 군대에 있어서 모르는 거야. 요즘 세상이 얼마나 치열하다고. 그나마 나는 직영에서 일을 해서 다른 애들보다 훨씬 더 상황이 나은 것이고 말이야. 너 그런 식으로 함부로 이야기를 하지마.”
“미안.”
은비가 흥분을 하자 상현은 황급히 사과를 했다. 은비가 그저 걱정이 되어서 한 마디 한 것이었다. 은비의 성격을 건드리고 싶어서 한 말은 절대로 아니었다. 은비 역시 자신이 다소 심하게 화를 낸 것에 손부채질을 하면서 상현의 시선을 피했다.
이게 뭐야. 이 녀석을 만나면 이런 식으로 행동을 하지 않기로 했는데. 그래도 어떻게 해? 안 그래도 고민인 것을 이 녀석이 정말 제대로 들어왔는걸. 아무리 생각이 없다고 해도 어떻게 그것을 바로 들어와?
“무슨 생각을 해?”
“아무 것도 아니야.”
상현은 아랫입술을 물고 가만히 은비를 바라봤다. 다시 은비를 만나면 하고 싶은 말이 정말로 많았다.
“누나 요즘 사귀는 사람은 있어?”
“아니.”
“그래.”
상현의 물음에 은비는 아랫입술을 물었다. 상현과 잠시 사귀고 나니 상현만큼 좋은 사람을 찾는 일이 쉽지는 않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을 만나도 크게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럼 누나 우리 두 사람 말이야.”
“미안.”
상현의 말이 끝이 나기 전에 은비가 황급히 그를 거절했다. 다시 시작을 하는 것은 최악의 생각이었다.
“우리는 아니야. 알아. 우리 두 사람이 서로 미워해서 헤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야. 하지만 더 이상 여덟 살이나 어린 애랑 같이 연애를 할 수 있는 그런 에너지도, 여유도 이제는 나에게 없어. 정말 미안해.”
“내 말은 그게 아닌데.”
“어?”
상현은 어색한 표정을 지으면서 은비를 보고 있었다.
“사람들이 카페에 많이 오는 것 같고, 나도 이제 배가 고프니까. 우리, 자리 좀 옮기는 것이 어떻겠냐고.‘
“어? 자리.”
은비는 황급히 얼굴이 붉어졌다. 설레발을 치다니. 쪽 팔려도 이렇게 쪽 팔릴 수가 없었다.
“옮기면 좋지. 옮기면.”
“그래. 그럼 옮기자.”
“일단 나 화장실 좀 다녀올게.”
“어? 어.”
은비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면서 재빨리 화장실로 도망을 쳤다. 상현의 시선이 궁금했지만 뒤도 돌아보지 않고 화장실에 들어가자마자 칸막이로 들어가서 변기커버를 덮고 위에 쪼그려 앉았다.
“미쳤어. 조은비. 아니 그 상황에서 왜 그런 바보 같은 행동을 하는 거냐고. 조금만 말을 더 듣고 이야기를 했어도 되는 거잖아. 세상에 쪽도 이런 쪽이 또 어디에 있어? 미쳤어. 아우, 미치겠네.”
은비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상현에게 마음의 상처를 주지 않겠다고 한 것이 자신에게 상처가 된 꼴이었다.
“아우 쪽 팔려. 상현이 얼굴을 어떻게 봐?”
상현이 눈앞에서 웃지는 않았지만 지금 엄청나게 속으로 비웃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떡 줄 사람은 생각도 하지 않는데 김칫국부터 마신 꼴이니까. 행여나 거절을 하더라도 상현이 먼저 이야기를 한 다음에 거절을 하는 것이 맞았다. 최소한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서 그러는 것이 맞았다. 하지만 갑작스럽게 자신과 어울리지도 않는 배려 때문에 이 망신을 당했다.
“조은비 너 정말로 어떻게 할래?”
화장실에서 나가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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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된다고?”
상현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은비에게 사귀자는 이야기를 하려 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은비와 두 사람 사이에 아주 조금이라도 가능성이라는 것을 두고 싶었다. 하지만 은비가 이렇게 강하게 그를 거절을 할 줄도 몰랐다. 은비의 말은 꽤나 상처가 되었다.
“뭐. 어쩔 수 없지. 나는 누나가 의지를 하기에는 너무나도 어린 아이니까. 이제 막 제대를 한 거고.”
객관적으로 바라본다면 자신은 누군가의 남자 친구가 되기에 부족한 것이 사실이었다. 돈이 많은 것도 아니었고 게다가 성격도 그리 좋은 편이 되지 못했다. 그래도 은비와 사귀는 기간은 즐거웠다.
“누나는 그 시간이 하나도 즐겁지 않았던 건가?”
술기운에 시작이 된 장난이기는 했지만 함께 하룻밤을 보냈고 소문을 퍼뜨리는 사람을 잡으면서 즐거웠다. 재미있었고 그 이후에 일 년이라는 시간을 사귀면서도 꽤나 행복했었다.
“하긴. 내가 군대를 지금 다녀온 시간이 얼마인데. 그것이 좋았더라도 진작 다 잊는 것이 맞겠지.”
상현은 겨우 미소를 지었다. 겨우 두 사람이 사랑을 한 시간은 일 년 정도였다. 게다가 군대에 가서 떨어진 기간이 이 년이었으니까 은비가 지금처럼 어색하게 느끼고 거절을 하는 것이 당연했다.
“그래. 김상현 이상하게 의미 같은 거 덧붙이지 말자. 지금 누나가 하는 행동은 정당한 행동이니까.”
멀리서 은비가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상현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은비 역시 상현 못지않게 어색한 미소를 지으면서 자리에서 가방을 들고 함께 카페를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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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은 힘들지 않아?”
“간단한 것인데.”
“그래도. 카페에서 일을 하는 것은 사람들을 많이 만나는 일이잖아. 사람 만나는 것이 가장 어렵잖아.”
“그럼 안 어려운 일이 어디에 있어?”
“그래도.”
“뭘 그래도야.”
파스타를 돌돌 말면서 은비는 명랑하게 대답을 했다. 한 번 망가진 이미지였지만 그래도 더 이상 망가질 수는 없었다. 이렇게 된다면 이제 나름 위엄이라도 있는 선배의 모습을 보여야 하는 거였다.
“복학은 하는 거야?”
“이번 학기는 쉬려고.”
“왜?”
“등록금도 벌어야 하고. 또 막 제대를 했는데 수업을 듣는 것도 무리일 것 같고 말이야.”
“그러면 나중에 졸업을 하고 문제가 생기는 거 아니야? 안 그래도 남자들은 군대를 다녀와서 여자들 보다 많이 늦는데 말이야. 네 동기 중에는 이번 학기에 졸업을 하는 애들도 있는 것 같은데.”
“뭐. 그렇지?”
상현은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그래도 불안한 것은 사실이었다. 조기졸업을 하는 여자 동기들을 보면 마음이 그리 편하지만도 않았다. 그녀들이 열심히 공부를 했다는 사실은 알았지만 그래도 불합리했다.
“너는 어학연수 같은 것은 안 가려고?”
“그런 것을 어떻게 꿈을 꿔.”
“요즘은 교환학생도 많잖아?”
“됐어.”
상현은 엷은 미소를 지으면서 고개를 흔들었다.
“그런 것은 내가 아니라도 할 사람이 많은데. 그냥 아르바이트나 할까 생각 중이야.”
“너 그거 별론데.”
“어?”
은비는 포크를 입에 물고 가만히 상현을 바라보더니 포크를 테이블에 내려놓고 물을 한 모금 마셨다.
“아르바이트 함부로 하는 거 아니야. 괜히 몸만 축이 나고, 돈은 하나도 안 되기도 한다고.”
“그래도 당장 내가 돈을 벌 있는 방법은 그것밖에 없잖아. 로또가 되는 것도 아니고.”
“그렇긴 그렇지.”
상현도 어색한 미소를 지으면서 파스타 속의 새우를 입속에 넣었다. 살짝 비릿한 새우가 입에 거슬렸지만 억지로 삼켰다.
“누나. 내가 왜 싫어?”
갑작스러운 상현의 질문에 은비는 입을 꼭 다물고 상현을 바라봤다. 지금 무슨 이야기를 하는 것일까?
“아까 내가 거절을 한 것 때문에 그래?”
“응.”
“너 나 좋아하니?”
상현은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뭐 그렇다고 싫어하는 것도 아니야. 누나랑 누가 뭐라고 해도 연애를 했고 그 시간 동안 누나를 사랑했으니까 그 마음이 지금 완벽하게 사라졌다고는 말을 하지 못하겠어. 그래도 그 시간만큼 좋아하는 것은 아니야.”
“나도 마찬가지야.”
은비는 엷은 미소를 지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거절을 한 거야.”
“그게 무슨 말이야?”
“우리 정말 많이 싸웠잖아. 아무리 사이가 좋아도 여덟 살이라는 세월은 지워지지 않아.”
“그런 것 때문이야?”
“어?”
상현이 목소리를 낮추면서 묻자 은비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게 무슨 말이야?”
“그냥 다른 이유라도 있지 않을까 생각을 했거든. 그래도 누나는 다른 사람이니까 말이야.”
“내가 달라?”
“응.”
“뭐가?”
“생각을 하는 것이.”
상현의 말에 은비는 자신을 가만히 생각을 해보았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을 해도 자신이 그렇게 보일 행동을 한 기억이 없었다.
“나 그런 적 없는데?”
“누나는 모를 거야.”
“그런데 너는 안다고?”
“응.”
“그런 것이 어디에 있어?”
은비는 미소를 지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말도 안 돼. 그냥 네가 지금 하는 말은 나를 한 번 떠보려고 하는 거지? 그런 거면 제대로 먹혔어.”
“그런 거 아닌데?”
상현이 억울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은비를 바라봤다.
“뭐. 지금 와서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도 참 우습지만 말이야. 아무튼 그런 누나의 행동들 때문에 누나가 좋았어. 다른 여자애들하고는 확실히 행동도 생각도 다른 사람이었으니까.”
“고마워.”
은비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면서 마늘빵을 입에 물었다. 순간 상현이 은비 입옆을 손으로 털어주었다.
“아직도 묻히고 먹냐?”
“사람이 어디 가니?”
“그래도. 이제 누나 나이가 몇 개인데.”
“그래. 나 나이 많다.”
은비는 억지로 밝게 웃으면서 대화의 분위기를 다른 곳으로 유도를 하기 위해서 노력을 했다. 아무리 적응을 하려고 하더라도 헤어진 전 남자 친구와의 식사는 그리 편한 분위기가 가능할 리가 없었다.
“나 누나가 일하는 카페에 취업을 할까?”
“어?”
“그게 낫겠지?”
“그건 왜?”
“아무래도 이제 막 사회로 돌아와서 이것저것 제대로 하지 못할 거 아니야. 누나가 좀 도와줄 수 있을 것 같아서.”
상현의 표정이 꽤나 진지했다. 지금 바로 생각을 한 것은 아닌 모양이었다. 은비는 조심스럽게 아랫입술을 물었다.
“그래도 불편하지 않을까?”
“누나는 내가 불편해?”
“아주 조금.”
“그렇구나.”
상현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며 물을 한 모금 마셨다. 은비가 불편할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을 하지 못한 눈치였다.
“왜 그런 표정이야?”
“내가 뭐?”
“내가 일을 하지 말라고 해서 서운해?”
“아니.”
상현은 미소를 지으면서 고개를 가로 저었다.
“그냥 신기해서 말이야.”
“뭐가 신기한 건데?”
“누나가 헤어지자고 이야기해서 누나는 그 일이 꽤나 담담하지 않을까 생각을 했거든.”
“안 그래.”
은비는 억울하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다소 목소리를 높였다.
“너는 내가 너에게 헤어지자고 이야기를 한 것이 그저 갑자기 나온, 그런 농담으로 들려? 그런 거야?”
“아니야.”
상현은 황급히 은비를 말리며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은비의 성격이 이렇다는 것을 잊고 있었다.
“그냥 되게 서운하기도 해서 말이야. 보통 이별을 이야기를 할 때 시간을 좀 가지자고 이야기를 하잖아.”
“시간은 무슨. 어차피 나는 헤어지기로 마음을 먹었는데 시간이 있다고 뭐가 달라지니?”
“그래서 누나는 후회 안 했어?”
“어?”
“나랑 헤어진 거 말이야.”
상현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면서 가만히 은비의 눈을 바라봤다. 은비는 그런 상현의 눈을 가만히 볼 수 없었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시선을 피했다.
“미안해.”
“아니. 내가 미안해.”
은비는 고개를 숙이고 조심스럽게 사과를 했다.
“네 말이 맞아. 아무리 너에게 헤어지자고 이야기를 하더라도 그런 식으로 헤어지자고 하면 안 되는 거였어. 그런 것은 에의가 없는 행동이었으니까 말이야. 하지만 견디기 힘들었어. 막 졸업을 하고 취업은 안 되고, 내 곁에서 위로를 할 사람이 필요했는데 너는 내 곁에 없었잖아.”
“내가 그러고 싶어서 그런 것이 아니잖아.”
“알아.”
이번에는 상현이 다소 목소리를 높이자 은비가 미소를 지으면서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상현은 물을 한 모금 마셨다.
“그래서 누나도 힘이 들었다고?”
“너보다 더 힘이 들었을 지도 몰라.”
“나보다?”
“너는 훈련을 받으면서 나를 그냥 원망을 하면 되었던 거잖아. 하지만 나는 하소연 할 곳도 없으니까.”
“그랬구나.”
상현은 어색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은비가 힘들었을 것이라는 것은 생각을 하지 못한 부분이었다.
“너 나 많이 원망했지?”
“조금.”
“더 해.”
은비는 미소를 지으면서 상현을 바라봤다.
“나를 미워해야지 네가 좋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 테니까 말이야. 그리고 아무리 생각을 해도 내가 잘못을 한 거야.”
“누나 잘못은 아니야. 누나에게 그런 선택을 하게 만든 내가 더 나쁜 사람이었던 거지.”
“너는 늘 어른스럽다.”
은비가 마지막 남은 소스에 빵을 찍어먹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래서 나는 네가 좋았어. 너보다 여덟 살이나 많은 나보다도 네가 더 어른스러운 모습이었거든.”
“그거 칭찬이지? 애늙은이 같다는 거 아니지?”
“칭찬이야.”
은비는 미소를 지으면서 계산서를 집어 들었다.
“이제 가자.”
“내가 계산할게.”
“됐네요.”
은비가 계산을 하는 모습을 보면서 상현은 가만히 한숨을 내쉬었다. 전에 연애를 하던 시절에도 은비가 돈을 내는 것이 더 많았지만 이렇게 너무나도 당연하게 은비가 돈을 내는 것은 아니었다.
“우리 아이스크림 먹을까? 내가 살게.”
상현은 애써 명랑한 미소를 지었다. 어쩌면 이것은 자존심이었다. 말도 안 되는 자존심이었지만 이것마저 포기할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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