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장
“조은비 너 미쳤어.”
“내가 왜?”
“손을 왜 잡니?”
택시 뒤에서 은희는 집에 가는 내내 은비를 구박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은비는 그런 은희를 보며 입을 내밀었다.
“내가 뭘 어떻게 했는데?”
“그러다 상현이가 오해를 하면?”
“걔는 그런 마음이 하나 없더라.”
“너 그거 모르는 거야.”
은비의 태평한 소리에 은희가 눈을 흘기면서 은비를 바라봤다. 하여간 똑똑한 척 하는 것들이 더욱 허술했다.
“애초에 너희 두 사람 그냥 하룻밤 술 먹고 그 사고를 친 거 아니었어? 그러면 조심해.”
“아무 것도 없었거든.”
은비는 입을 내밀면서 고개를 저었다. 아무 일도 없었던 그날 밤이 이상한 섹스 스캔들로 변하는 바람에 상현과 자신은 그 소문을 내는 사람을 잡기 위해서 노력을 했었다. 그리고 그것이 실제 섹스로 이어지기는 했지만 그래도 그날 잠 상현은 자신을 지켜주기 위해서 노력을 다 했다. 어쩌면 자신이 그 날은 여성으로 매력이 전혀 없었을 수도 있었지만. 뭐 이편이 더 가능성이 높았다.
“아무튼 너 조심해.”
“그만 좀 해.”
은희가 계속 잔소리를 하자 은비는 미간을 모았다.
“언니는 그렇게 나랑 상현이를 못 믿어?”
“너를 못 믿어. 너 상현이 덮칠 것 같아.”
“언니!”
은비가 새된 비명을 지르면서 은희를 한 대 때렸다.
“그게 무슨 말이야?”
“나랑 같이 자취를 하면서 남자 한 번 제대로 만난 적이 있어? 외박을 한 적이 있어?”
“그런 이야기가 왜 나와?”
“너는 석녀야.”
“아우, 조은희 하여간 변태.”
은비는 상대를 하지 않으려는 듯 시선을 피하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런 은비를 은희는 계속 옆구리를 찔렀다.
“왜 찔려?”
“찌르는 것은 지금 언니네.”
“하여간 재미없는 농담.”
은희는 팔짱을 끼고 뒤로 기댔다. 은비는 미간을 모으면서 가만히 은희의 얼굴을 바라봤다.
“나 안 그래.”
“뭘 안 그래?”
“한 번 헤어진 사람하고는 다시 사귀지 않을 거라고. 그런 것이 뭐야. 한 번 사랑하는 사람이 헤어졌을 때는 다시 그것을 회복을 할 수 없다는 생각이 있어서 헤어지고 그러는 거라고.”
“너는 아니잖아.”
“어?”
“너는 아니라고.”
은희는 가볍게 검지로 은비의 머리를 밀었다.
“이 바보는 자기가 정말로 상현이를 싫어해서 헤어진 줄만 알고 있네. 너 아직 좋아해.”
“그런데?”
“그래서 다르다는 거라고. 다른 사람들은 정말 마음을 깨끗이 지우고 헤어지는 거라니까?”
“그럴 리가 있어?”
은비는 볼을 부풀리면서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그래도 사랑하는 사람 사이에서 사랑하는 마음이 사라질 수는 없었다.
“그 마음이 줄어들 수는 없어도 어떻게 사라지니?”
“그러니까 네가 이상하다는 거야.”
은희는 은비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분명히 은비는 상현을 많이 좋아하고 있는 상태에서 헤어지자는 이야기를 했었다. 분명 사랑하고 있는 것이 보였는데도 말이다. 그런데 지금 보니 조금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조은비 너 정말 특이해.”
“나 하나도 안 특이해. 그나저나 우리 이렇게 술 마시고 내일 장사는 제대로 할 수 있을까?”
“뭐 어려워? 이제는 한 명 더 늘었는데.”
“언니 너무 상현이 부려 먹지 마.”
“왜? 네 낭군님이어서?”
“낭군이었으니까.”
은비가 미소를 짓는 것을 보며 은희는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리 봐도 은비는 여전히 상현을 좋아하고 있었다.
“아우 나는 모르겠다.”
“갑자기 왜 이래?”
“아니야.”
“언니가 이러면 나는 괜히 무섭다니까? 왜 그래? 무슨 일인지 제대로 이야기를 해줘야 마음이 편하지.”
“너 정말로 마음을 지운 거야?”
“아우, 또 그 소리.”
은비는 미소를 지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절대로 그런 말도 안 되는 일이 생기지 않을 테니까 너무 걱정은 하지 마세요. 무슨 말도 안 되는 걱정이야.”
“그렇지?”
“그렇다니까.”
은비는 애써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상현의 생각이 많이 난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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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로 안 늦었네?”
“아까 통화 했을 때 거의 올 분위기였어요. 그런데 엄마는 나를 기다리느라 아직도 안 자던 거예요?”
“어.”
“못 말려.”
상현은 승현을 보면서 고개를 저었다. 다소 과한 것 같더라도 자신을 걱정을 하는 모친이 참 고마웠다.
“엄마가 꿀물이라도 타줄까?”
“오다가 아이스크림 하나 먹었어요.”
“그걸로 되겠어?”
“충분해요. 그럼 주무세요.”
“알았어.”
상현은 방에 가서 옷도 벗지 않고 그대로 침대에 누웠다. 머리가 너무나도 복잡했다.
“김상현 이게 도대체 뭐냐?”
상현은 오른손을 들어 가슴에 얹었다. 뛰지 않을 것 같던 심장이 이상하게 뛰고 있었다.
“미치겠다.”
뛰지 않아야 하는 심장이었다. 뛰면 안 되는 것이었는데 이상하게 자신을 괴롭혔다.
“나보고 어떻게 하라는 거야?”
분명히 깨끗이 잊었다고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아니 완벽히 잊은 것이 맞았다. 잊었는데 은비의 얼굴을 보니 이상하게 가슴이 뛰고 이전의 행복했던 기억이 생각이 났다. 재미있었고 즐거웠던 기억.
“그 시절이 생각이 나면 안 되는 건데.”
아무리 이렇게 이야기를 하더라도 한 번 마음이 움직이니 마음이라는 것이 쉽게 닫힐 것 같지 않았다. 머리가 이렇게 복잡하게 될 것이라고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하지만 상현은 이런 마음에 괜히 의미를 붙이지 않기로 생각을 했다. 일단 은비의 모습을 보니 그와의 추억은 모두 잊은 모양이었다.
“하긴 누나는 나이도 많고, 이제 더 이상 과거에 머물러서는 안 되는 사람이기도 하니까.”
상현은 애써 미소를 지으면서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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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아침입니다.”
“벌써 와서 기다린 거야? 하여간 젊은 것이 좋아.”
은희는 가게 문을 열면서 고개를 저었다. 자신과 은비는 어제 마신 술 때문에 탈이 나서 한참을 고생을 했는데.
“상현이 너는 술에 안 취한 것 같다?”
“저는 그래도 남자잖아요.”
“이런 데서 차이가 나네.”
은희는 혀를 두르면서 가게에 전원을 올렸다. 은비는 기지개를 켜며 입이 찢어져라 하품을 했다. 그런 은비를 보며 상현이 낮게 웃었다.
“아직도 그렇게 하품을 하네?”
“하품을 하는 게 바뀌냐?”
“그래도 여자가 말이야.”
“너 그거 성차별적인 발언이다.”
은희는 미소를 지으면서 상현에게 앞치마를 던졌다. 상현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면서 머리를 긁적였다.
“그런가요?”
“그럼. 은비야 너 바닥 좀 닦아.”
“제가 할게요.”
은비가 화장실로 가기 전에 상현이 황급히 화장실로 가서 대걸레를 가지고 왔다. 열심히 일을 하는 상현을 보며 은희는 씩 웃었다.
“은비야 상현이 일 열심히 한다?”
“그건 모를 일이지.”
아침 일곱 시 정신도 제대로 차리지 못했을 텐데 상현은 정말 자신의 가게처럼 열심히 일을 하고 있었다. 마침 가게 문이 열렸다.
“어서오세요.”
“새 직원인가 봐요?”
“아, 네.”
상현은 고개를 들었다. 근처의 회사에 다니는 직장인인 듯 깔끔한 옷차림의 사내가 가게에 들어오고 있었다.
“오늘도 라떼 맞죠?”
“그리고 오늘은 회의가 있어서 아메리카노도 열아홉 잔 더 만들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아우, 고맙기는 저희가 고맙죠.”
은비는 씩 웃으면서 계산대로 가서 카드를 받았다.
“그나저나 오늘은 평소랑 다르네요?”
“오늘은 제 카드라서요.”
“어머. 류 팀장님 카드요? 언니 류 팀장님 카드래.”
“그러게.”
은희는 씩 웃으면서 글라이더로 원두를 갈기 시작했다. 상현은 그런 두 사람을 보면서 고개를 갸웃했다.
“저기 상현아. 이 커피 좀 같이 들어다 드려.”
“아니에요.”
류 팀장이라는 사람은 미소를 지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지금 막 오픈을 하느라 바쁜 것 같은데. 우리 사무실 바로 이 근처이니까 내가 가지고 갈 수 있어요.”
“그렇게 근처이니까 배달을 해드리는 거죠.”
은희는 능숙한 표정을 지으면서 말을 받았다.
“알았지?”
“네.”
상현은 미소를 지으면서 화장실로 가서 대걸레를 놓고 손을 씻었다. 나오니 커피는 모두 준비가 되어 있었다.
“정말로 혼자서 가도 괜찮은데요.”
“이게 다 팀장님 덕분에 우리가 장사가 잘 되어서 그렇죠.”
“두 분이 맛있는 커피를 만들어서 그렇죠. 그나저나 오늘은 평소보다 커피가 조금 맛이 없겠어요?”
“어머.”
은희는 입을 내밀면서 살짝 눈을 흘겼다.
“우리 류 팀장님은 은비만 이렇게 좋아하시네. 우리 두 사람 중 바리스타 자격증은 나만 있거든요?”
“그래도요.”
류 팀장이라는 사람은 싱긋 미소를 지으면서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은희는 그런 그를 보며 고개를 저었다.
“그렇죠. 우리 류 팀장님은 처음 오실 적부터 은비를 그렇게 좋아하셨으니까. 얘가 커피도 못 만들 때부터.”
“사람이 좋잖아요.”
“그러니까.”
은비도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으면서 손으로 브이를 그려 보았다. 상현은 가볍게 어깨를 으쓱하며 그들 사이에 끼었다.
“이거 가지고 가면 되는 건가요?”
“정말로 괜찮은데요.”
“아닙니다.”
상현은 미소를 지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이 남자가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더 이상 여기에서 은비와 노닥거리는 것을 보고 싶은 마음은 아니었다. 그래서 자존심이 상하지만 커피를 들었다.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조심해서 가세요.”
상현이 류 팀장의 커피를 들고 가는 것을 보고 사라지고 나서야 은희는 미소를 지으면서 은비의 등을 때렸다.
“조은비 너 좋겠다?”
은비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뒤를 바라봤다.
“그게 무슨 말이야?”
“류하 씨랑 상현이랑 전부 너를 좋아하는 것 같은데?”
은비는 고개를 갸웃했다. 평소에도 은희가 하는 이야기를 알아듣기 어려웠지만 오늘은 조금 더 심했다.
“그게 무슨 말이야?”
“상현이 너 신경을 쓰잖아.”
“아니야.”
은비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상현도 물론이고 류하 역시 그녀를 좋아할 리가 없었다. 은비는 아랫입술을 세게 물고 몸을 부르르 떨었다.
“류 팀장님이 무슨.”
“왜? 매일 너 좋다고 하잖아.”
“언니는 농담도 구분 못 해?”
“그게 농담 같아? 내가 보기에는 진담인데.”
원두 찌꺼기의 물을 짜면서 은희는 살짝 입을 내밀었다.
“아무렴 사람이 자기 마음에도 없는 사람에게 그런 이야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할 수가 있겠냐? 사람한테 마음이 있으니까 그런 이야기를 하는 거지.”
“에이, 그냥 매일 같이 우리 카페에 커피를 사러 오니까 그냥 친하게 지내려고 그러는 거지. 뭐 다른 마음을 가지고 있을까봐?”
“그런데 나에게는 언제 한 번 그렇게 좋아한다는 이야기라도 한 적이 있어? 한 번도 없잖아. 그런데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거야?”
“그냥 처음에 내가 류 팀장님의 주문을 받은 사람이니까 그러는 거지. 언니는 그걸 그렇게 크게 생각을 하냐?”
“하여간 너는.”
은희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물기를 꼭 짠 원두를 종이 백에 넣은 후 카운터 옆의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너 그렇게 남자 마음 제대로 알지 못하다가 남자 때문에 엄청 고생을 하는 날이 온다.”
“언니는 내 연애에 신경 좀 쓰지 말아요. 언니부터 일단 시집가야 뭐라도 할 테니까.”
“아우, 그래 다 내 탓이지?”
“그럼.”
은비의 대답에 은희는 가볍게 그녀의 등을 때렸다.
“아무튼 조은비 너 이 언니 말을 너무 쉽게 생각을 하지 마. 내가 보기에 두 사람 다 너를 좋아하니까.”
“그런 거 아니라니까?”
“그런데 상현이 그 녀석이 왜 그렇게 서둘러서 커피를 들고 나가려고 그러냐? 너랑 류 팀장이 같이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보기 싫어서 그런 거라니까? 너는 그거 보고도 못 알아봐?”
“언니가 상현이를 몰라서 그래. 한 번 자신에게 시킨 일이면 무조건 열심히 한다니까?”
“그래도 자기가 싫어하는 일도?”
은희의 말에 은비는 고개를 갸웃했다. 상현이 싫어하는 일이라고? 자신이 보기에 그런 것은 알 수 없었다.
“그게 무슨 말이야?”
“정말 못 봤어? 상현이 표정 말이야.”
“상현이 표정?”
은비는 가만히 상현의 표정을 다시 생각을 해보았다. 하지만 은희가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상현이 그 일을 싫어하는 것 같은 표정을 생각을 할 수가 없었다. 은비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언니가 오해를 하는 거야. 상현이 그 아이가 그냥 귀찮아서 그런 것을 가지고 말이야.”
“귀찮은 것이 아니라니까?”
“어차피 자기가 할 일이니까. 그나저나 왜 평소에 하지도 않던 커피 배달을 다 시키냐?”
“왜? 류 팀장님 우리 가게에서 커피를 얼마나 많이 사주시는데? 아침부터 첫 고객이 이만 오백 원이나 매출을 올려줬다. 이 정도 마수걸이면 해줘도 모자랄 지경이거든?”
“언니야 말로 류 팀장 너무 챙기는 거 아니야?”
은비는 살짝 미간을 모았다. 그녀의 말처럼 은희는 이상할 정도로 류 팀장을 많이 챙겨주고 있었다.
“항상 가게에서 타르트 같은 것을 만들면 류 팀장에게 주고 말이야. 언니가 더 수상해.”
“이게 다 비즈니스야. 너는 국어국문학과를 나와서 모르겠지만, 이게 다 사는 지혜거든.”
“나는 몰라.”
은비는 귀를 막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언니의 그렇게 말도 안 되는 철학을 들을 생각도 없고요. 언니 이야기를 듣는 것은 시간 낭비라니까?”
“너 정말 언니에게 그럴래?”
“언니나 그러지 마. 앞으로 괜히 상현이랑 나를 엮지 말라고 상현이가 들으면 얼마나 어이가 없겠어?”
“왜 어이가 없니? 사실인데.”
“사실이 아니니까 그러지.”
“사실 맞아.”
은희는 힘을 주어 말을 했다. 그런 은희를 보면서 은비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은희가 원래 자신을 놀리는 일을 즐겁게 생각을 한다는 것은 알았지만 오늘은 조금 그 정도가 심했다.
“언니가 나랑 류 팀장님을 놀리는 것은 좋은데 말이야. 상현이는 놀리지 마. 알았지? 상현이가 들으면 얼마나 우습겠어? 그리고 상현이랑 내가 좋게 헤어진 거 아니라는 거 알잖아.”
“너는 좋아했다며?”
“그 이야기는 끝이라니까.”
은비는 아랫입술을 물고 고개를 저었다.
“아무튼 부탁을 할게.”
“너 나중에 내 말이 맞으면 어떻게 할래?”
“어차피 틀릴 건데 그런 이야기를 해서 뭐해?”
“그러니까.”
은비가 단호하게 부정을 하자 은희가 눈을 반짝이면서 은비의 어깨를 가볍게 주물렀다. 은비는 귀찮은 듯 은희를 떼어냈다.
“언니 나이가 몇 개인데 이러고 노냐?”
“내 나이가 무슨. 아무튼 어떻게 할 거야?”
“뭘 어떻게 해?”
“책임을 져야 할 거 아니야. 너 내가 하는 말은 절대로 아니라고 했잖아. 그런데 아무리 봐도 지금 상현이 마음 네가 생각을 하는 것하고 다르거든. 물론 지금 너는 그러한 것을 전혀 보지 못하고 있는 것 같지만 말이야.”
은희의 말에 은비는 가만히 그녀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도대체 왜 이렇게 짓궂게 행동을 하는 것일까?
”언니 나이가 몇인데 그래?”
은비는 밀가루를 체로 거르면서 고개를 저었다.
“그런 식으로 이야기를 하다가 나중에 상현이가 들으면 언니랑 나랑 둘 다 유치하다고 이야기를 할 걸.”
“안 그럴 걸?”
“그럴 거야.”
“안 그럴 거라니까?”
은희는 입을 내밀면서 냉장고에서 블루베리를 꺼낸 후 싱크대에 가서 채반에 놓고 씻기 시작했다.
“네가 지금 상현이가 어떤 상황인지 몰라서 그러는 것인데 말이야. 그 녀석은 너를 좋아한다니까?”
“아니라고.”
“분명해.”
“언니!”
결국 참다못한 은비가 크게 고함을 질렀다.
“언니가 그렇게 이야기를 하면 나도 상현이에 대한 생각이 괜히 이상하게 변한단 말이야. 그러니까 그만해.”
은희는 당혹스러운 눈으로 은비를 바라봤다.
“너 그게 무슨 말이야?”
“나도 상현이가 좋아.”
“정말로?”
은비는 힘겹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것을 은희에게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았지만 이런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면 은희가 이러한 이야기를 그만 두지 않을 것이기에 어쩔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너 아직 못 잊은 거야? 미쳤어.”
은희는 채반을 내려놓고 은비의 등을 때렸다.
“그러면서 애를 왜 취업을 하자고 그래?”
“잊고 있으니까.”
“너 그게 말이 되니? 만일 상현이를 보지 않고 있다면 네 말대로 잊고 있는 것이 말이 되겠지. 하지만 네가 상현이를 안 보는 것도 아니고 말이야. 상현이를 일주일에 주말 빼고 다 볼 텐데.”
“어떻게든 되겠지.”
“미쳤어. 너 미쳤어.”
은희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깊은 한숨을 토해냈다. 은비가 이럴 것을 알면서도 말리지 못한 자신이 더 문제였다.
“내가 너 이럴 줄 알았어.”
“내가 뭘?”
“너 생각 없이 구는 거 말이야. 아무리 내가 너 미쳤다고 해도 네가 이런 식으로 굴지 몰랐다.”
“언니가 생각을 하는 그런 거 아니야.”
“그럼?”
“그냥 미련이야.”
은비는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출근을 하자마자 꺼내놓았던 우유를 밀가루에 부었다.
“그러니까 언니도 과민반응하지 마.”
“너 그게 변한다니까?”
“변하기는 뭘 변해?”
“상현이를 좋아하는 마음으로 말이야.”
은희의 답에 은비는 가만히 아랫입술을 물었다.
“그게 무슨 말이야?”
“사람이라는 것이 원래 매일 만나게 되면 호감이라는 것이 생기게 되는 법이잖아. 그런데 너 말이야. 아직 상현이에게 미련이 있는 상태에서 그렇게 부딪히는데 그것이 아무렇지 않을 것 같아?”
“응.”
은비는 힘을 주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아무렇지 않을 거야.”
“어떻게 그래? 어떻게 그렇냐고.”
“언니랑 나는 다르니까.”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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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희가 당혹스러운 눈으로 은비를 바라봤다.
“너 그게 무슨 말이야?”
“나는 언니가 아니야. 나는 사랑하는 사람이 떠났다고 그렇게 멍청하게 혼자서 괴로워하지 않는다고!”
“조은비!”
결국 당황한 은희의 손이 은비에게로 날아갔다. 은비는 자신의 뺨을 만지면서 고개를 저었다.
“왜 때려?”
“미, 미안해.”
“됐어.”
은비는 내미는 은희의 손을 뿌리쳤다.
“조은희가 하는 행동이 그렇지. 하지만 언니가 명심을 해야 하는 것은 말이야. 나는 언니가 아니라는 거야. 물론 언니는 언니가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는지도 몰라서 그런 식으로 망치고 말았지.”
“은비야.”
“하지만 나는 상현이의 얼굴을 매일 보더라도 그것이 아무렇지도 않게 변할 자신이 있단 말이야.”
“그건 모르는 거야.”
은희는 가슴에 손을 얹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자신도 잘 견딜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것은 쉽지 않았다. 한 번 사랑을 한 사람과 계속 만나게 되는 일은 말 그대로 최악이었다.
“너 그러면 너만 힘들 거야.”
“힘들어도 내가 힘들어.”
“은비야.”
“만일, 아니 절대로 그런 일은 생기지 않겠지만 말이야. 그래도 내가 다시 상현이를 좋아하게 되더라도 이런 마음은 나 혼자서 그냥 숨기고 말 거야. 상현이가 알게 만들지 않을 거라고.”
“그래도 상현이는 알 거야.”
“언니가 그걸 어떻게 알아?”
“그 사람도 알았으니까.”
은희의 고백에 은비는 가만히 아랫입술을 물었다. 그 사람 때문에 은희가 많이 아팠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언니.”
“그러니까 은비야 제발 이런 바보 같은 짓은 하지 말자. 내가 다른 아는 사람들에게 상현이 일자리를 물어볼게.”
“싫어.”
은비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나 그렇게 도망을 가고 싶지 않아.”
“이게 왜 도망이야?”
“상현이에게 혹시 생길지 모르는 마음을 부정하기 위해 도망가려고 하는 거잖아. 안 그래? 너 지금 그냥 피하기만 하는 거라고.”
은희는 아랫입술을 세게 물고 은비의 눈을 바라봤다. 은비는 한숨을 토해내면서 그런 은희의 눈을 피하기만 했다.
“조은비. 너 정말 왜 이러는 거니?”
“나도 모르겠다.”
은비는 아랫입술을 세게 물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은희는 은비의 눈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그 마음이 생기면, 너는 어떻게 할 건데? 그래도 너는 가만히 그 마음을 가지고 있을래? 너 결국에 흔들릴 거야. 내가 너를 모르니? 나 네 언니야. 네 언니라고. 너 그 흔들리는 마음을 어떻게 할 거야?”
“만일 지금 상현이가 내 곁에서 사라진다면 나는 더욱 큰 미련이 생길 지도 몰라. 오히려 자꾸만 보고 그 마음을 죽이는 게 더 나아. 정말로 이 사람이 나에게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한다는 거 알고.”
“은비야.”
“그러니까 보고 견딜 거야.”
은비는 엷은 미소를 지으면서 고개를 흔들었다. 아무리 생각을 하더라도 자신의 방법이 맞았다.
“언니의 말처럼 내가 상현이랑 계속 보게 되면 상현이의 마음이 다시 바뀌게 될 지도 몰라. 그러니까 정말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어. 이미 다 끝이 난 건데 이제 와서 다시 시작을 한다는 거 너무 우스운 일이잖아. 안 그래?”
“그러니까. 조심해야 하는 거야. 제발. 응?”
“알았어. 조심할게.”
은희는 깊이 한숨을 내쉬었다.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은 아무리 조심하더라도 달라질 것이 없었다.
“너 다시 상현이 좋아하게 되면 너만 아프게 될 거라는 거, 잘 알고 있지?”
은비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언니 나 잠시 나갔다 올게.”
은희는 나가는 은비를 보면서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은비를 막아야 하는데 자신이 없었다.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미치겠다.”
은희는 쓸쓸한 미소를 지었다.
“도대체 저 등신은 왜 저러는 거라니? 아우 답답해. 자기 마음 하나 제대로 모르고 도대체 왜 저러는 거야?”
은희는 숨을 한 번 내쉬고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그녀가 나선다고 해서 달라질 것은 하나도 없었다. 모든 것은 전부 다 은비가 감당해야 할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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