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정말 아무 데서도 일을 할 수 없으면 나에게 연락을 해. 그 정도는 내가 도와줄 수 있으니까 말이야.”
“괜히 누나에게 폐가 되는 거 아니야?”
“아니야.”
은비는 미소를 지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헤어진 연하의 남자 친구에게 이 정도도 해주지 못하는 것은 비참했다.
“어차피 그리고 우리 카페에서도 새로 일을 할 사람을 모집을 하려고 그랬어. 요즘 사람이 많이 모자라니까.”
“그래? 아르바이트 하려는 사람이 많지 않나?”
“그래도 보수도 적은 편이고 말이야.”
“적어?”
“왜? 그래서 싫어?”
“아니.”
상현은 미소를 지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은비가 말은 이렇게 하더라도 이 자리를 만들어주기 위해서 은비가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알고 있었다. 상현도 상현 나름대로 이곳저곳 일을 구하려고 노력을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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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일 다 구했는데요.”
“여기 아르바이트 안 구해요.”
“남자는 안 되는데.”
“시급은 3500원이에요.”
“야간에만 가능하거든요?”
“요즘 대학생이 얼마나 많은데요.”
“우리도 여학생만 뽑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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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아니야.”
은비의 물음에 상현은 미소를 지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괜히 은비에게 이런 기분을 들키고 싶지 않았다.
“일은 할만해?”
“역 근처이기는 해도 대로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살짝 뒤로 가 있는 곳이니까. 생각 외로 한가하기도 하고.”
“그럼 좋은 건가?”
“뭐 사장님은 안 좋겠지?”
“그런가?”
상현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저기 누나.”
“응?”
“우리 그만 어색하자.”
“어?”
상현의 갑작스러운 고백에 은비는 가만히 입을 다물었다.
“그게 무슨 말이야?”
“아니, 누나도 지금 느끼고 있잖아. 우리 두 사람 너무 어색하다는 것을 말이야. 나도 지금 누나가 되게 어색하기는 한데. 이런 식으로 계속 어색하게 행동을 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 말이야. 그리고 나도 이제 누나랑 같이 일을 하면 누나가 조금 편하게 생각이 되어야 하는데. 지금 누나랑 나 사이에는 그런 것 보다는 괜히 이상한 위화감 같은 것만 있는 거잖아.”
은비는 가만히 상현의 말을 들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 역시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느낌은 지금 자신만 느끼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을 했었다. 누가 뭐라고 해도 은비가 상현을 밀어낸 것이었으니까. 그래서 불편했고 또 어색했고, 상현과 편히 말을 섞을 수 없었다.
“그래도 우리 두 사람 사이가 무조건 격의 없어지는 것도 어려울 것 같은데. 내 생각은 그런데.”
“그래도 누나. 우리 이제 시간도 많이 흘렀잖아? 이 정도면 싸우던 친구도 앙금이 풀렸겠다. 안 그래?”
“그런가?”
“그런 거 맞아.”
상현은 억지로 미소를 지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괜히 은비가 자신에게 미안한 감정을 느끼는 것이 싫었다. 헤어지는 것이 옳았다. 보통 군대에 가기 전에 헤어지자고 말을 하는데 왜 자신은 그러지 않았던 것인지 후회도 되었다. 하지만 이미 지나간 일이었고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또 아무리 우리 두 사람이 사귀던 사이라고 하더라도 부정할 수 없는 선후배 사이인 거 아니야?”
“맞지.”
“그러니까. 우리 다른 것은 생각을 하지 말고 우리 두 사람이 선후배였던 것 생각을 하자. 어때?”
“그것도 좋기는 하지만.”
“똑바로 말을 하세요.”
은비가 말을 얼버무리자 상현은 미소를 지으면서 고개를 흔들었다. 은비의 성격을 생각을 해볼 때 상현이 이런 식으로 자신의 뜻을 끝까지 이야기를 하지 않으면 은비는 다시 유야무야 만들 것이 분명했다.
“내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은 말이야. 일단 누나도 나에게 너무나도 어색하게 생각을 하기도 하지만 나도 그런 누나가 불편하다는 거야.”
“아무리 그래도 내가 너에게 막 대할 수는 없잖아.”
“왜 못 그래?”
“어?”
“천하무적 조은비 어디에 갔어?”
“내가 나이가 몇인데?”
“실망이야.”
은비가 미소를 지으면서 가만히 고개를 저어 보이자, 상현이 정말로 실망을 한 듯 미간을 모았다.
“나는 아무리 시간이 지나더라도, 아무리 나이가 많이 먹더라도 조은비는 조은비일 줄 알았는데 말이야.”
“나도 그랬지.”
“그런데?”
“너도 이제 막 제대를 해서 모르는 거야. 사회에서 조금만 생활을 해봐. 그럼 내 말을 알 걸?”
“엄청 어른이 되셨네요.”
상현은 씩 웃으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누나는 그런 것과 전혀 상관이 없는 사람일 줄 알았어. 그래서 나는 누나를 좋아했던 거고 말이야.”
“네가 나를 잘 몰라서 그래. 너랑 사귀면서도 나는 여러 생각이 많았는데. 엄청 복잡했었어.”
“그게 문제네.”
“어?”
“그게 문제라고.”
상현은 엷은 미소를 지으면서 음료수를 한 모금 마셨다. 자신은 스무 살이었기에 그런 고민이 없는 것이 당연했다. 하지만 스물여덟인 은비도 그런 걱정이 없을 거라고, 그런 고민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을 하면 안 되는 거였다. 특히나 일을 하기 위해서 휴학을 한 은비를 위해서는 더더욱 아니었다. 자신이 그렇게 어리게만 행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은비를 생각을 했어야 했다.
“내가 좋은 남자 친구는 아니었지?”
“갑자기 그게 무슨 말이야?”
“지금 생각이 들어서.”
“갑자기 왜?”
“나는 누나에게 버팀목이 못 되어서.”
“버팀목은 무슨.”
은비는 작게 소리를 내서 웃으면서 음료수를 들이켰다. 상현과 사귀면서 그런 것은 기대하지 않았다.
“내가 기댈 수 있는 사람을 만났다면 선배를 찾았을 거야. 나는 그런 사람보다 즐거운 사람이 좋아.”
“내가 버팀목이 안 된 것은 맞네?”
“그것도 아니야.”
“내가 버팀목이었다고?”
“응.”
은비는 밝게 웃으면서 힘을 주어 고개를 끄덕였다.
“말도 안 돼.”
“왜 말이 안 돼?”
“나는 그때 학교에서 적응을 하기도 바빴는 걸?”
“그래도 너는 내게 힘이었어.”
은비의 고백에 상현은 어색하게 미소를 지었다. 아무리 헤어진 사이라도 이런 칭찬은 기분이 좋았다.
“정말로 그렇게 생각을 한 거야?”
“응. 그렇지 않다면 너랑 일 년이라는 시간 동안 사귀지 못했을 거야. 그리고 지금 말을 하는 것인데 말이야. 네가 군대에 있을 때 헤어지자고 한 것도. 사실은 되게 망설이고 그랬던 거였어.”
“그랬겠지. 그리고 그것은 누나가 이미 이야기를 했잖아. 벌써 치매라도 온 거야? 한 이야기 또 하게.”
“그런 정도의 생각이 아니고 말이야.”
상현의 놀림에도 은비는 미소를 지으면서 애써 침착 하려고 노력했다. 상현에게 미안한 마음에 이상하게 심장이 두근거렸다.
“정말 많이 생각을 했어. 너랑 함께 하는 것이 옳을까? 지금까지는 충분히 즐거웠는데. 하지만 이제 더 이상 내가 즐거운 것만 생각을 할 수 있는 나이는 아니잖아. 이것저것 생각을 해야 하고 말이야. 이제 나이도 서른이 되었으니까 결혼이라는 것도 생각을 해야 하고 말이야. 취업은 또 어떻게 하지? 원래 캠퍼스 커플의 경우 한쪽이 취업을 하면 자연스럽게 멀어진다고 하던데. 이런 생각들이 너무 많이 들었어. 그래서 내가 끝을 내는 것이 옳다고. 그렇게 생각을 했어.”
“그랬구나.”
상현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쩌면 자신이 군대에 있을 때 일방적으로 헤어지자고 이야기를 들은 것이 다행일 지도 몰랐다. 군대에서 은비의 거절을 당한 덕에 아무 것도 생각을 할 필요도 없이, 그저 훈련만 열심히 하면 그것으로 충분했었다. 그리고 그것이 또 하루를 견디는 힘이었다.
“사실 이런 생각을 많이 하더라도 말이야. 네가 군대에서 나오기를 기다린 다음에 할까도 생각을 했어. 아무리 생각을 해도 나 혼자서 결정을 내리고 나서 너에게 통보를 하는 것은 싫었으니까.”
“그런데도 한 거네.”
“응. 생각을 하면 할수록 내 생각이 바뀔 것 같지가 않더라고. 그렇다면 너에게 거짓말을 할 필요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을 했어. 그래도 네가 군대에 있는 시간이 아직 남아 있었으니까 말이야. 그 시간 동안 마치 너에게 좋은 여자 친구인 것처럼 그렇게 행동을 할 자신이 없었어.”
“잘 했어.”
상현은 밝게 미소를 지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상현도 아주 조금 알고 있었다. 은비가 멀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다만 어쩌면 그는 그것을 부정하고 싶었을 지도 몰랐다. 은비를 잡을 수 없었으니까.
“누나가 아무리 나에게 일방적으로 헤어지자고 이야기를 했다고 하더라도 누나와의 시간은 즐거웠어.”
“나도 마찬가지야.”
“그러니까 우리 이제 그 시간은 추억으로 만들자. 우리 두 사람을 보면 그게 아직도 진행을 하고 있는 것 같아. 그러니까 지금 우리 두 사람 사이가 이렇게 어색해지는 것이고 말이야. 안 그래?”
“그렇지.”
은비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상현의 말처럼 여전히 그를 남자로만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더욱 어색했다. 조금이라도 빠르게 이 말도 안 되는 생각을 접어야 했는데, 아니 이미 접었다고 생각을 했는데 상현의 얼굴을 다시 보니 그 말도 안 되는 생각이 다시금 떠오르고 있었다.
“정말로 미안해.”
“아니라니까.”
은비의 거듭된 사과에 상현이 미소를 지으면서 고개를 흔들었다. 이렇게 은비가 미안할 일이 아니었다.
“군대에 간 사이에 헤어지는 것이 우리 두 사람만의 일도 아니고 말이야. 왜 그렇게 미안해 하는 거야?”
“그래도 우리 두 사람은 그런 일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을 했잖아. 너는 나를 되게 믿고 그랬잖아.”
“원래 그런 거야. 그리고 내가 누나를 믿었다면 그 상황에서 헤어지자고 말을 하는 것이 옳았어.”
“어?”
“헤어지자고 말을 했어야 했다고.”
상현은 장난스럽게 웃으면서 음료수를 한 모금 더 마셨다.
“나는 되게 이기적이니까. 다른 애들이 군대에 간 남자 친구를 견디는 것을 얼마나 힘들어 하는 지 다 알고 있었으면서도 누나에게 같은 것을 강요했어. 그러면 안 되는 것이었는데 말이야.”
“네가 헤어지자고 말을 했더라도 내가 헤어지자는 것에 동의를 하지 않았을 거야. 너를 좋아했으니까.”
“우리 둘 다 바보인 건가?”
“응.”
은비는 엷게 미소를 지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냥 바보라고 생각을 하고 싶지는 않아. 누가 뭐라고 하더라도 우리는 좋았으니까 말이야.”
“그래 정말로 좋았어. 우리가 사귀는 시간이 그리 길지 않아서 그랬던 것일까? 우리는 싸우지도 않았어.”
“싸우기야 했지.”
“그런가?”
“그럼.”
은비의 가물가물한 기억에 상현이 미소를 지으면서 고개를 흔들었다. 싸우기도 정말 많이 싸웠다.
“누나가 거의 내가 사는 집에 와서 같이 사는 편이었잖아. 그래서 사소한 것으로 많이 싸웠잖아.”
“맞네.”
순간 은비가 고개를 끄덕이며 유쾌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너 양말 뒤집어 놓는다고 말이야.”
“그리고 나는 누나 속옷 안 입고 티셔츠만 입은 채로 동네 슈퍼까지 간다고 뭐라고 했었지.”
“맞아. 너 웃겼어.”
상현의 말에 은비가 밉지 않게 눈을 흘겼다.
“미국에서는 거의 속옷을 입지 않는다고.”
“그래도 누나 젖꼭지가 다 보였다.”
“야. 너는 민망하게.”
“왜?”
상현은 유쾌하게 미소를 지으면서 가슴 부위에서 손가락을 서로 다른 방향으로 가리켰다. 은비는 바로 웃으면서 소파의 쿠션으로 상현을 때렸다. 상현은 그것을 피하면서 유쾌하게 웃었다.
“하여간 내가 어리기는 참 어렸어. 누나 같은 가슴이 정상이라고 생각을 했었으니까 말이야. 말을 다 한 거지? 어떻게 조은비의 가슴이 정상적인 여자의 가슴이라고 생각을 한 것일까?”
“내 가슴이 어디가 어때서?”
“이렇잖아.”
상현이 다시 한 번 손가락을 가리키자 은비가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상현은 이내 미소를 지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아무튼 좋았어. 참 좋았어.”
“그러니까. 싸우기도 되게 많이 싸웠는데. 우리 두 사람이 서로 좋아하니까 싸울 수 있었던 것 같아.”
“당연하지.”
“그런 거 맞지?”
“응.”
은비의 물음에 상현은 힘주어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만일 누나를 좋아하지 않았더라면 누나가 나에게 하는 이야기들을 제대로 듣지도 않고 그냥 넘겼을 거야. 그런 것이 우리 두 사람 사이에 중요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을 했을 테니까.”
“네가 군대를 가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응?”
“그럼 잘 사귈까?”
“그럴 지도 모르겠지.”
상현은 미소를 지으면서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쩌면 두 사람은 결혼을 했을 지도 모를 일이었다.
“내가 확 도장을 찍는 건데.”
“무슨 도장?”
“혼인 신고.”
“뭐라고?”
상현이 장난스럽게 웃으면서 말을 하자 은비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상현은 그런 은비를 보며 어깨를 으쓱했다.
“왜 그런 반응이야?”
“너는 그런 것까지 생각을 한 거야?”
“당연하지.”
“정말? 정말로 결혼까지?”
“응.”
살짝 당황한 모습을 보이는 은비와는 다르게 상현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라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이상한 생각을 했던 것은 아니잖아. 누나랑 내 사이가 그 정도로 가까운 사이였으니까.”
“그래도 말이지. 상현이 너는 나이도 되게 어렸잖아. 그런데도 그런 생각을 했었단 말이야?”
“나를 생각을 해서 그런 것이 아니었지요.”
“그러면?”
“누나 나이.”
“나?”
“응.”
상현은 유쾌한 표정을 지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이 사귈 적에 정말 진지하게 고민을 했었다.
“나 그때 정말로 누나를 좋아했었잖아. 그리고 남자들에게는 약간 이상한 그런 것이 있어. 정말로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결혼을 생각을 하는 그런 거 말이야. 누나는 그런 거 모르나?”
“여자들도 있거든.”
상현의 말에 은비는 입을 내밀며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여자들도 그런 것을 생각을 해. 이 남자랑 내가 결혼을 하면 그 모습은 어떻게 되는 걸까? 이렇게 말이야.”
“누나도 생각을 했어?”
“흐음.”
상현의 물음에 은비는 가만히 검지를 물었다. 그런 생각을 상현과 만난 적에 한 적이 있었을까?
“그렇게 오래 생각을 하는 것 보니 없구나?”
“있었어.”
상현의 물음에 은비는 황급히 대답을 했다. 가만히 기억을 더듬어 보니 분명 자신도 그런 생각을 했었다.
“내가 여태까지 살면서 섹스를 하면서 상현이 너처럼 그렇게 여자를 배려하는 사람은 못 봤어.”
“내가 그렇게 섹스를 잘 해?”
“처음에는 못 했지.”
은비는 놀리듯 명랑하게 대답을 했다.
“그런데 상현이 너는 정말 네가 말을 한 것처럼 하면 할수록 느는 애더라. 어쩌면 그렇게 섹스가 빠르게 늘어?”
“이게 다 능력이지.”
“하여간 못 말려요.”
상현의 너스레에 은비는 고개를 흔들었다.
“아무튼 너는 이것저것 여자를 되게 많이 배려를 하더라고. 식사를 할 때 기다리는 것도 그렇
고.”
“내가?”
“응.”
은비는 밝게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상현과 함께 한 시간은 아주 작은 감동의 연속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기다리지 않아?”
“응.”
“거짓말.”
“사실이야. 아무래도 남자가 여자보다 밥을 조금 빠르게 먹게 되는 편이니까. 다소 부담스럽다고 해야 하나?”
“그래도 기다리잖아.”
“그런 것이 아니지.”
은비는 엷게 미소를 지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상현이 너는 혼자 있을 때는 너무나도 밥을 빠르게 먹잖아. 너무 빠르게 먹어서 걱정이 될 정도로 말이지. 그런데 너는 항상 나랑 같이 먹을 때는 밥을 천천히 먹으면서 나랑 시간을 맞추더라?”
“내가?”
“응.”
“나는 몰랐는데.”
“그러니 더 멋있네.”
“왜 더 멋있는 건데?”
“모르고 한 거니까.”
은비의 칭찬에 상현은 귀까지 붉어진 채로 고개를 숙였다. 그런 상현을 보면서 은비는 가만히 웃었다.
“가만히 생각을 해보면 말이지. 내가 김상현이라는 남자를 사랑을 하게 된 것이 정말로 행복한 일이었다는 생각이 들어. 비록 지금은 함께 하는 연인이라는 이름은 아니지만. 그래도 너여서 좋았어.”
“그거 칭찬이지?”
“응.”
은비가 고개를 끄덕이자 상현도 밝게 미소를 지었다.
“그나저나 그럼 우리 이제 근무를 하면서 어색하게 지내지 않는 거 맞지? 조금 더 편하게 말이야.”
“너만 괜찮다고 하면 나는 괜찮아. 사실 나는 너에게 미안해서 조금 더 어색한 마음이 드는 거니까.”
“미안한 마음 가지지 마.”
상현은 미소를 지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누나가 먼저 나에게 그랬잖아. 정말로 누나를 사랑을 하는 거라면 군대는 나중에 가라고 말이야.”
“내가?”
“응. 기억이 안 나는 거야?”
“응.”
은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말을 자신이 했었나? 하지만 아무리 생각을 해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내가 언제 그랬어?”
“나 군대 간다고 누나에게 말 했던 날.”
“그 날?”
가만히 생각을 하던 은비는 미간을 모으고 고개를 저었다.
“그 날 우리 술 마셨잖아.”
“그렇지.”
“나 완전 취했잖아,”
“하여간 못 말려.”
은비의 핑계에 상현은 웃으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런 털털한 면이 바로 은비의 매력이었다.
“이제 일어날까?”
“응.”
밖으로 나오니 사람들이 꽤나 많은 편이었다.
“데려다줄까?”
“됐습니다.”
은비는 고개를 저었다. 상현의 집은 카페에서 은비의 집과 정반대에 있는 곳이었다. 안 그래도 늦은 시간이었다.
“혼자서 갈 수 있습니다.”
“요즘 안 좋은 사람이 많다던데?”
“서른 넘은 여자는 취급 안 하더라.”
“누나가 조금 동안이잖아.”
“그런가?”
은비는 밝게 웃으면서 상현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앞으로 잘 부탁해.”
“응.”
상현은 은비가 멀어지는 것을 보며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다 잊었다고 생각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마음이 무거웠다.
“김상현 촌스럽게 왜 이러냐?”
상현은 미소를 지으면서 고개를 흔들었다. 제대롤 하고 모든 것을 다 잊으려고 했는데 쉽지 않았다.
“조은비라는 사람이 나의 삶에서 아무런 자리도 차지하고 있지 않다고 생각을 했는데 되게 크구나.”
한 순간 지나가는 사랑이라고 생각을 했었다. 어쩌면 그렇게 생각을 했기에 군대에서 은비가 이별을 말을 했을 때도 견딜 수 있는 힘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힘이 없었다.
“힘들다.”
여전히 은비를 좋아하고 있을 줄 몰랐다. 그 마음이 여전히 가슴에 남아서 괴롭힐 줄 몰랐다.
“이런 게 미련인 건가?”
상현은 입을 내밀고 발걸음을 옮겼다. 아무리 마음이 무겁더라도 빨리 집에 가서 잠을 청해야 했다.
“누나에게 잘 보여야 하니까.”
그래도 같은 일을 하는데 조금 더 똑똑한 모습으로 보이는 것이 좋았다. 게다가 이제 막 사회로 돌아온 터라 이것저것 서툰 것도 많았다. 그런 것을 다 무마시킬 정도로 일을 잘 하려면 푹 쉬어야 했다.
“그래. 김상현 내일의 일은 내일 생각하자.”
상현은 미소를 지으면서 더욱 힘차게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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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쳤어. 조은비.”
은비는 가만히 고개를 흔들었다.
“거기서 그런 이야기는 왜 해서.”
아무리 생각을 해도 섹스 이야기를 한 것은 무리수 중에서도 완벽한 무리수였다. 그냥 어색한 분위기를 깨려고 한 말이었는데, 상현이 아니었다면 이런 말에 더욱 어색한 상황이 되었을 것이 분명했다.
“그 녀석이 성격이 좋아서 다행이지.”
은비는 깊이 한숨을 내쉬었다. 자신이 이런 성격을 고치려고 하는데도 이상하게 안 고쳐지고 있었다.
“조은비. 정신 차리자. 이제 너도 서른하나면 알 나이가 되었잖아. 언제까지 그렇게 철이 없게 굴래?”
상현을 처음 만나던 스물여덟이라는 나이는 그래도 아직 대학생이라는 신분이 있어서 어리게 보이는 것이 상관이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어엿한 사회인이었고 상현에 비해서 확실히 선배였다.
“제대로 보여주자. 조은비. 너 할 수 있어. 상현이가 너를 그렇게 많이 의지를 하고 있는데 말이야.”
자신이 상현이었다면 절대로 자신에게 일자리를 구하지 않을 거였다. 그것은 우스운 일이기도 하고 무서운 일이기도 했으니까. 은비가 거절을 한다고 했으면 상현은 어떻게 행동을 했을까?
“아유. 그런 생각은 하지도 말자.”
상현에게 미안한 것이니까 어느 정도 보상을 하는 것이 맞았다. 그것이 자신에게도 마음 편한 일이었다.
“그런데 이 가슴은 왜 이러는 거냐고.”
미친 듯 심장이 뛰었다. 하지만 은비는 애써 고개를 저으면서 심장을 부정했다. 오랜만에 만난 거니까. 그래서 그런 거였다.
“그래. 내가 기억을 하고 있는 상현이의 모습과는 다르게 더욱 어른스러운 모습이라서 그렇다고.”
그런 것에 이제 연연할 나이는 아니었다. 서른하나라는 나이는 더 이상 그런 것이 중요하지 않았다.
“정신 좀 차리자. 조은비. 너는 정말 훌륭한 선배로 다시 자리를 잡을 수 있는 거야. 더 이상 민폐가 아니라.”
이제 술자리에서 괜히 후배들에게 눈치를 주는 그런 선배가 아니었다. 말실수를 하는 것도 싫었다. 정말 제대로 일을 하는 그런 선배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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