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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영화] 스틸 앨리스, 가족이 모여서 먹는 저녁

권정선재 2015. 5. 16. 23:37

[맛있는 영화] 스틸 앨리스, 가족이 모여서 먹는 저녁

 

Good 잔잔한 휴먼 드라마 좋아하는 사람

Bad 영화 특유의 자극을 찾는 사람

평점 - ★★★★ (8)

 

알츠하이머에 걸려 기억을 잃어가는 앨리스라는 인물을 두고 벌어지는 이야기는 그 자체로 서글픕니다. 사실 오늘날 기억을 잃어간다는 것은 그다지 새로운 병은 아닙니다. 이전보다 오래 사는 어른들이 늘어나면서 자신의 기억을 잃고, 결과적으로 자신을 잃어가는 사람은 너무나도 많아지고 있습니다. 치매에 걸리는 분들도 많고요. 하지만 우리는 이에 대해서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을 거라고 생각을 하거나 우리 가족은 피할 거라고 생각을 하는 거죠. 말도 안 되는 거라는 걸 알면서도 다들 그럽니다. 그리고 모든 영화나 드라마들은 이미 그 일이 벌어지고 나서의 이야기를 다룹니다. 기억을 잃어가는 과정 같은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그 사람에게 얼마나 큰 두려움을 안기는지, 그런 것은 하나도 제대로 고려하지 않는 거죠. [스틸 앨리스]는 바로 그 과정을 세세하게 그려냅니다. 자신이 알츠하이머에 걸려서 기억을 잃어간다는 것을 알아버리는 한 여자, 그리고 그녀를 둘러싸고 있는 가족의 이야기를 가만히 그려내는 거죠. 어느 날 갑자기 병이 와서 모든 기억을 잃는 것이 아니니까요. 천천히 자신의 기억을 지워내는 한 여인의 이야기는 그래서 더욱 서글픕니다.

    


스틸 앨리스 (2015)

Still Alice 
8.6
감독
리처드 글랫저, 워시 웨스트모어랜드
출연
줄리안 무어, 알렉 볼드윈, 크리스틴 스튜어트, 케이트 보스워스, 에린 다크
정보
드라마 | 미국 | 101 분 | 2015-04-29
글쓴이 평점  







더군다나 앨리스라는 존재가 한 가족의 가장 소중한 어머니의 위치에 있다는 것이 [스틸 앨리스]를 더욱 서글프게 만드는 부분일 겁니다. 가족 중에 어머니라는 자리는 너무나도 중요합니다. 다소 이질적이고 부딪칠 수도 있는 가족을 한 자리에 묶어주는 것이 결국 어머니라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죠. 늘 우리의 곁에서 든든하게 존재할 것 같은 어머니가 천천히 자신을 잃어가는 과정을 바라보는 가족들의 아픔이 그래서 더 클 수밖에 없을 겁니다. 늘 그 자리에서 우리가 무슨 일을 하던 다 지켜봐주시고, 그래도 괜찮아. 이렇게 이야기를 해줄 것 같은 엄마가 결국 그 자리에 더 이상 없을 수도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하는 거니까요. 그리고 강인하게 모든 것을 다 해낼 수 있는 엄마가 이제 더 이상 자신도 모른 채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은 서러울 수밖에 없을 겁니다. [스틸 앨리스]는 참 신기하게도 이것을 그저 신파로만 풀어내지 않습니다. 그저 한 병에 걸린 사람의 이야기를, 그녀와 그녀의 가족을 둔 채로 풀어내는 것이 전부죠. 억지로 관객에게 더 슬퍼하라고, 당신은 울어야 한다고 이야기하지도 않습니다. 그냥 이런 일이 누군가에게나 일어날 수 있고 그냥 어떤 일이다. 이렇게 말을 하는 것이 전부죠. 서러운 듯 서글픈, 그러나 유난떨지 않는 영화가 [스틸 앨리스]입니다.

    

기억을 잃어가는 여교수 앨리스역은 줄리안 무어가 맡았습니다. 그녀의 침착한 연기는 [스틸 앨리스]를 더욱 빛내는 부분입니다. 그녀는 자신이 기억을 잃어간다는 것을 꽤나 잘 받아들입니다. 물론 겉으로 보이는 것이 잘 받아들이는 거지 실제로 그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아닐 테지만 말이죠. 그녀는 비명을 지르지도 괴로움에 몸부림을 치지도 않습니다. 그리고 그 상황에서도 자신이 유전자로 인해서 알츠하이머에 걸렸다는 이유로 자식들에게 검사를 받기 권합니다. 혹시나 자식들에게 그런 말도 안 되는 것을 자신이 전달한 것이 아닌가 걱정을 하는 거죠. 어머니의 모습을 최대한 덤덤하게 포현합니다. 억지로 오버하지 않고 천천히 기억을 잃어가는 앨리스의 모습은 그래서 더욱 서글픕니다. 자신이 겪고 있는 지금 이 상황을 외면하고 싶지만, 이런 상황을 겪고 싶지 않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정작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기 때문이죠. 기억을 잃어가는 것은 결국 부정할 수 없는 그녀의 증상이고 이 상황에서 앨리스는 조금이라도 더 많은 일을 하고자 합니다. 딸의 연극을 보고, 남편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죠. 손주를 품에 안으며 시간을 보냅니다. 지금 이 아름다운 시간을 모두 잃어버릴 수 있더라도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는 앨리스는 그래서 아름답습니다.

    

그다지 큰 사건이 벌어지지도 않고 기억을 잃어가는 과정을 묵묵히 그리는 [스틸 앨리스]는 사실 심심할 수도 있는 영화입니다. 하지만 오히려 그 심심한 과정이 좋습니다. 거기에 정말로 삶이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죠. 특히나 기억을 잃어가면서 벌어지는 일들을 사실적으로 그려낸 것이 좋았습니다.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어하는지를 잊어가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천천히 잊어가는 한 여자. 너무나도 똑똑해서 많은 것을 할 수 있지만, 거꾸로 그로 인해서 더 빨리 기억을 잃게 되고 너무 많은 것을 아파할 수밖에 없는 한 사람의 이야기가 영화에서 고스란히 그려집니다. 그런데 이 영화가 좋은 것은 그러니까 불쌍하게 생각해야 해. 이런 식으로 풀어내지 않는다는 거였습니다. 충분히 아프고 죽을 만큼 힘든 사람의 이야기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조건 힘들고 아프다고 풀어내지 않습니다. 어떤 한 사람이 자신의 아픔을 겪는 과정을 묵묵히 그려내는 이야기. 그 안에서 한 사람이 겪는 고통과, 그 사람의 고통을 같이 누리는 가족에 대한 이야기. 요즘 같이 알츠하이머나 치매와 같은 일이 일반화 되어버린 시대에 우리가 한 번 보면 좋은 영화가 아닐까 생각이 됩니다. 가족이란 무엇인지. 다시 한 번 따뜻하게 바라보게 만들거든요. 가족의 의미를 되살리는 영화 [스틸 엘리스]입니다.

 

20082009201020112012년 다음 우수블로거 권순재 ksjdowa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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