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어쩌다 마주친 그대
“하여간 싸가지.”
지아는 휴대전화를 확인하고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아니 그냥 휴가를 보내주면 그걸로 끝이지. 거기에서 취재라니.
“취재 같은 소리 하고 있네.”
지아는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인스타그램을 켰다가 곧바로 종료 버튼을 눌렀다. 수많은 알림. 다이렉트 메시지. 모두 다 그녀에 대한 욕설이었다. 천하의 이윤태. 그를 건드린 벌이었다.
“내가 한 거 아니라고.”
그냥 쓴 기사였다. 하지만 그게 설마 뉴스가 될 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당연히 데스크에도 내지 않았다. 그런데 망할 옆자리의 염 기자. 그 망할 것이 그런 짓을 한 거였다. 하지만 이미 누구 탓을 할 수도 없었다. 기사를 쓴 것까지는 사실이었으니까. 정확한 팩트 조사도 없이.
“어쩌다가 이렇게 된 거냐.”
그냥 쓴 기사였다. 크로스체크도 하지 않은 기사. 그런데 그걸 데스크에서는 아무렇지도 않게 내버렸다. 그래 그런 식으로 내는 기사는 많았다. 하지만 기자의 이름을 걸고 나가는 경우는 드물었다.
“미치겠다.”
지아는 휴대전화를 꺼버렸다. 아무에게도 연락을 받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출국심사대로 가던 그녀의 걸음이 멈췄다.
“저거 뭐야?”
이윤태였다. 그리고 그의 싸가지 없는 매니저 서준. 도대체 저 둘이 여기에 왜 있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젠장.”
지아는 낮게 욕설을 내뱉고 몸을 돌렸다. 그리고 누군가와 부딪쳤다. 이마를 문지르는데 갑자기 들리는 커다란 목소리.
“어머! 강지아 기자님.”
지아는 고개를 들었다. 낯이 익은 얼굴. 여자는 지아를 안 것이 엄청나게 반가운 모양이었다.
“강지아 기자님. 저 맹세연이에요. 맹세연. 어머 여기에서 어떻게 기자님을 다 뵐 수가 있을까? 반가워요.”
“아 네.”
지아는 윤태가 혹시라도 자신을 눈치 챌까 어색한 미소를 지으면서 누니를 살폈다. 하지만 세연은 그저 기쁘기만 한 모양이었다.
“기자님께서 저를 라이징 스타라고 딱 써주셔서. 제가 이렇게 잘 되고 있는 거잖아요. 어디 가는 길이세요?”
“아. 여행을 좀.”
“여행. 부럽다.”
부럽건 말건 목소리를 좀 낮추라고. 지아는 아랫입술을 물고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다 윤태가 이쪽을 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고개를 숙였다.
“어 아는 분이세요?”
“아니.”
세연이 주위를 둘러보자 지아는 고개를 저었다.
“아무도 아니야.”
“기자님.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이네요.”
“그러게요.”
인연 같은 소리 하고 있네. 지아는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이런 식의 인연이라면 절대 사절이었다.
“그런데 자기는 다른 일행이 있는 거 아니야? 여기에서 이렇게 나랑 시간을 보내면 안 되는 거지.”
“아 일행 없어요. 제가 선발이고 다른 사람들은 다 후발이라서요. 그래서 저 혼자 가는 거예요.”
“그래요.”
이대로 가다가는 그냥 이윤태한테 걸릴 것이 분명했다. 다른 곳도 아니고 공항에서 만날 수는 없는 거였다.
“그럼 우리 커피라도 마실래요?”
“저 커피 마셨는데?”
“그럼 내가 마시려고.”
“어? 기자님.”
지아는 세연의 손을 끌고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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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래?”
“아니야.”
서준의 물음에 윤태는 고개를 저었다. 분명히 강지아라는 말을 들은 거 같은데 어디에도 그 여자는 보이지 않았다.
“잘못 들었나 봐.”
“뭘 잘못 들어?”
“강지아.”
“강지아?”
서준은 코웃음을 치며 고개를 흔들었다.
“네가 그 여자한테 스트레스를 많이 받기는 했나 보다. 그 여자가 도대체 공항에 왜 있어? 지금 악플이 엄청나게 많다고 하더라. 너 못지 않게. 아니지. 너보다 훨씬 더 많인 난리가 난 상태야.”
“그렇지?”
윤태는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라도 여행을 가는 길에 그 여자를 만난다면 너무 끔찍했다.
“그나저나 사람 너무 많은 거 아니야?”
“그러게. 그러니까 내가 자동 출입국 심사 등록하라고 했잖아. 그거 하면 이렇게 안 기다려도 되는 건데.”
“그거 하면 도장을 못 찍잖아.”
윤애는 자랑스럽게 여권을 펼쳐보였다. 꽤나 많은 도장이 찍힌 상태였다. 서준은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
“너는 애도 아니고 뭐 그런 걸 그렇게 좋아하냐?”
“형. 원래 이런 건 이런 낭만이 있어야 하는 거야. 형도 이런 데 취미라도 좀 붙여봐라. 무슨 사람이 취미가 없어.”
“네 뒤치다꺼리로 죽을 거 같아.”
“말이라도.”
윤태는 입을 내밀었다. 안 그래도 서준이 자신 때문에 고생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기에 더욱 미안했다.
“그래서 내가 형이랑 같이 가는 거잖아.”
“네가 나랑 같이 간다고 했냐? 절대로 싫다고 했지. 사장님이 너 가서 또 무슨 짓이라도 할까 나랑 보내는 거잖아.”
“조용히 좀 해.”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지자 윤태는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이내 서준을 보고 미간을 모았다.
“다들 나를 알아본다고.”
“어차피 다 중국 사람이야. 니 하오. 니 하오.”
서준은 능청스럽게도 주위 사람들에게 손을 흔들었다. 윤태는 그런 서준을 보며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흔들었다.
“하여간 사람이 여유로워.”
“초조할 거 뭐가 있어?”
“대단하세요.”
“내가 좀 그렇지.”
윤태는 코웃음을 쳤다. 그리고 앞으로 나가려는 순간 누군가와 부딪쳤다. 윤태는 미간을 찌푸렸다.
“아 죄송합니다.”
바닥에 떨어진 여권을 주워가는 남자. 윤태는 미간을 찌푸렸다.
“뭐야? 저 자식.”
“바쁜가 보지.”
윤태가 화를 내자 서준은 그를 말리며 고개를 저었다.
“이윤태. 그냥 가자.”
“저거 사과도 제대로 안 하고.”
“그냥 가자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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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권 업무도 힘드네요.”
“그렇지.”
나라의 투정에 지웅은 미소를 지으며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그래도 그는 공항이 즐거웠다.
“사람들 표정을 보며 재밌지 않아?”
“표정이요?”
“응. 저마다 설레는 표정. 때로는 초조한 표정. 뭐 이런저런 표정을 보면 뭔가 여행이구나 싶거든.”
“그러네요.”
나라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지웅은 그런 나라를 보며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도 이제 막 처음 항공사 직원으로 근무하게 된 그녀가 조금이라도 이 일을 사랑하기를 바랐다.
“다음 고객님.”
“여기요.”
나라는 여권을 확인하고 남자의 얼굴을 본 후 지웅을 바라봤다. 지웅도 어색한 티를 내지 않고 여권을 보는데 예약된 것과 이름이 달랐다.
“저 권윤한 고객님.”
“네?”
“이거 여권이 본인 게 아니신데.”
“네?”
윤한은 놀라서 다급히 여권을 다시 확인했다. 자신의 것이 아니라 이윤태라는 사람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어! 아닌데. 내 여권이.”
앞에 맨 작은 가방을 뒤지던 윤한의 눈이 커다래졌다.
“아까. 어떤 남자랑 부딪쳤는데 바뀌었나봐요.”
“아.”
“안내 방송 해드리겠습니다.”
나라가 잠시 당황한 사이 지웅은 능숙하게 응대했다.
“잠시 기다려주시겠습니까? 이쪽으로.”
“네? 네.”
윤한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채로 지웅의 행동을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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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이윤태 씨 여권이 아닌데요?”
“네?”
발권할 때까지만 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던 여권이었다. 윤태는 여권을 확인해서 보다가 미간을 찌푸렸다.
“이거 뭐야?”
“권윤한? 아까 부딪친 사람.”
“젠장.”
윤태의 입에 낮게 욕설이 나오자 서준은 어색하게 웃으며 직원에게 고개를 숙였다.
“저기 이런 경우 어떻게 해야 하죠?”
“지하에서 임시 여권으로 발급 받으실 수도 있지만 지금 시간이 그렇게까지는 안 나오실 거고 찾으셔야죠.”
“일단 알겠습니다.”
서준은 윤태를 잡아서 줄에서 나왔다.
“왜 이러는 거야?”
“너는 거기에서 욕을 하면 어떻게 해?”
“젠장도 욕이냐? 젠장.”
서준은 주위의 눈치를 살폈다. 윤태는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러다 저 앞 카페의 여자를 보고 미간을 모았다.
“강지아?”
“뭐?”
서준이 말릴 틈도 없이 윤태는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다시 누군가와 부딪쳤다.
“도대체 누구야?”
“어!”
아까 그 남자. 권윤한이었다.
“다행이다. 여기요.”
윤한은 윤태의 손에 있던 여권을 빼앗다시피 해서 가져갔다. 그리고 자신의 이름을 확인하고 지웅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죄송합니다.”
그리고 윤태가 뭐라고 하기도 전에 멀어졌다.
“뭐야? 저 새끼.”
윤태는 낮게 욕설을 내뱉으며 미간을 찌푸렸다. 하지만 지금은 저런 것한테 신경을 쓸 때가 아니었다.
“강지아.”
눈앞에 강지아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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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델을 그만 둘 거라고?”
“네.”
세연은 빨대를 만지작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등록금 벌려고 했던 일이라서 굳이 그렇게까지 애착을 갖고 있지는 않거든요. 이제 그만 해도 될 거 같아요.”
“그래도 아쉽다.”
지아는 세연의 손을 꼭 잡으며 이해를 한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면 그냥 학교에 다니려고?”
“아무래도 그래야죠?”
“다른 일은?”
“안 하려고요.”
세연은 음료수를 한 모금 마시고 혀를 살짝 내밀었다.
“이쪽 일이라는 게 사실 사람이 평생 업으로 삼아서 할만한 것은 아니잖아요. 사람을 지치게 하기도 하고요.”
“그렇지.”
“이제 이쯤이면 된 거 같아요.”
“그렇게 속을 파내는 건가?”
지아는 익숙한 목소리에 놀란 표정을 지은 채로 고개를 돌렸다. 윤태였다. 도대체 저 자식이 여기에 왜 있어?
“어머. 이윤태.”
“나랑 할 이야기 없어?”
지아는 어색하게 웃었다. 피한다고 피한 거였는데. 도대체 왜 또 윤태와 여기에서 마주치는 건지 머리가 지끈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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