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영화] 설국열차, 얼음에 혀를 베이다.
Good – 진지한 개혁을 스크린으로나마 보고픈 분
Bad – 매끄러운 느낌의 영화를 바라는 분
평점 - ★★★★
이 영화에 대해서 굳이 재미있는 영화, 재미없는 영화. 이렇게 구분을 하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설국열차]는 의미가 있으면서 그 자체로 완성형이면서 동시에 진행형이고, 재미가 있으면서 지루하기도 한 영화입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좋은 영화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일단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전에 저는 ‘꼬리 칸’이라는 단어가 한국인인 ‘남궁민수’가 그것을 설계해서 ‘Korea Kan’ 뭐 이런 의미인 줄 알았어요. 꼬레. 뭐 이런 의미인 줄 알았는데 그냥 마지막 칸이었더라고요. 가장 아래에 있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였는데 저는 다르게 생각을 했었습니다. 아무튼 이 영화는 기차 안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입니다. 아무래도 한정된 장소 안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인 만큼 다소 지루하게 진행이 되지 않을까 생각을 했는데 다행히 그런 진행은 전혀 아닌 느낌입니다. 한정된 공간 안에서 계급이 나누어지고 각자의 계급에 맞추어서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완벽하게 진행이 되니까요. 사실 많은 분들이 이미 이야기를 하기는 했지만 [설국열차]는 우리 세상의 축소판과도 같은 것입니다. 우리는 각자의 신분에 어울리는 삶을 살기 바라니까요. 더 높은 곳에 올라가기를 바란다면 더 많은 것을 내놓아야 하고 결국 우리들 모두가 당하고 말 테니까요.
마지막 칸에 타서 무엇으로 만들었는지도 모를 젤리 덩어리를 먹으면서 연맹하던 ‘커티스’ 일행의 반란은 지나치게 잔인하기도 하고 지나치게 루즈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루즈함과 잔인함이 이 영화의 모든 것을 이야기하는 부분이 아닐까 생각이 됩니다. 그저 평범하기만 한 사람들이 최악의 인간이 되어가니까요. 우리 스스로 무언가를 얻기를 원하면서 혼자서 고매한 척. 나는 그런 거 못 해.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한다면 우리가 얻고자 하는 것을 제대로 손에 넣을 수 없을 겁니다. 그건 비단 이 영화만의 현실이 아니라 실제로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도 그렇죠. 우리가 가질 수 없는 것. 우리의 손에 닿지 않는 것을 가지기 위해서 우리는 우리가 평소에 정상적이라면 절대로 하지 않을 일들을 행해야만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우리 스스로이기를 포기하고, 우리 자신을 내려놓는 바로 그 순간이 와서야 우리는 제대로 우리가 원하는 것을 손에 넣을 수 있게 되는 거죠. 그러한 인간사가 이 영화에 고스란히 놓여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무언가 커다란 것을 얻기 위해서는 커다란 희생을 해야만 한다는 것 역시 이야기를 하죠. 그러한 종류의 희생을 하기 싫다면 결국 아무 것도 얻을 수 없는 것이고 말이죠. 지나치게 잔인하기는 하지만 그 역시 우리가 살아가는 삶 그 자체에기에 이해를 하고 넘어갈 수 있는 부분입니다.
‘크리스 에반스’는 새로운 지도자 ‘커티스’ 역을 맡았는데 사실 그다지 애정을 주기는 어려운 인물입니다. 마지막에야 나오는 그의 트라우마 이유가 드러나기 전까지 그는 찌질하기만 한 인물입니다. 스스로 어떠한 선택을 내릴 수 없는 인물이죠. 늘 누군가가 대신 결정을 해주기를 바라며 자신의 선택에 대해서 늘 불안하게 믿는 사람입니다. 전혀 그렇게 생각을 할 것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말이죠. 결국 그는 그 스스로 어떠한 결정을 내리기 전까지는 지도자가 되지 못하는데 바로 거기까지 가는 과정이 꽤나 지루한 편입니다. 그의 희생이 꽤나 숭고해보이기는 하지만 결국 그의 희생이 아닌 것들이 나열이 되면서 다소 불편하기도 하고요. 게다가 결정적인 순간이 올 때마다 은근히 머뭇거리는 느낌을 보이기도 합니다. 상대적으로 대사도 적었던 ‘송강호’에게 은근히 포스가 밀리는 이유가 바로 이 부분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의 연기가 그다지 나쁜 것은 아니었지만 ‘커티스’라는 캐릭터 자체가 가지고 있는 한계가 분명히 있으면 말이죠.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캐릭터에 대한 이야기를 가장 먼저 하는 이유는 마지막까지 가게 되면 이 캐릭터가 어떠한 캐릭터인지 명확하게 잡히기 때문이죠. 자신이 숭고하지 않다는 것에 대해서 괴로움을 가지고 있던 한 청년은 숭고해지는 선택을 함과 동시에 자기 삶의 지도자가 됩니다.
‘송강호’는 열차를 설계한 ‘남궁민수’라는 캐릭터를 맡았는데 여태 그가 맡았던 다소 가벼우면서도 묵직한 느낌의 캐릭터를 고스란히 이어나갑니다. 사실 그다지 특별할 것은 없는 캐릭터입니다. 그런데 생각을 해보면 송강호라는 배우는 늘 자신의 역할을 하기에 마음에 드는 배우인 것 같습니다. 억지로 무언가에 대해서 도전을 하지 않는 거죠. 사람들이 송강호라는 배우에 대해서 기대를 하는 것이 있다면 그대로 그것에 만족을 주는 배우인 겁니다. 생각 외로 괜찮은 느낌입니다. 다만 영화 자체에서 그가 그다지 활약을 벌일 수 있는 부분이 없다는 것이 아쉬운 부분입니다. 아무래도 그가 맡은 ‘남궁민수’는 이 영화의 주인공이 아니니 말이죠. 결정적으로 반란을 일으키는 것은 ‘크리스 에반스’의 역할이니 상대적으로 작은 느낌입니다. 다만 이 역할은 후로 갈수록 점점 더 커다래집니다. 아무래도 영화의 구조상 후반부로 갈수록 다치는 이들로 인해서 인원이 줄어들게 되면서 그러면서 점점 더 비중이 커지는 거죠. 게다가 자발적으로 반란에 참여하게 되는 사람들과 다르게 ‘남궁민수’와 그의 딸 ‘요나’의 경우에는 어쩔 수 없이 이 안으로 끌려들어오게 되는 이들입니다. 아무래도 그 다른 입장이 살아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요나’ 역의 ‘고아성’의 경우 그리 큰 비중은 아니지만 자신만의 색을 또렷하게 냅니다. 어딘지 모르게 ‘배두나’의 느낌이 묻어날 정도로 다소 모호한 느낌인데요. 그녀 역시 그다지 정상적인 느낌의 캐릭터는 아닙니다. ‘남궁민수’처럼 타의로 인해서 반란에 휘말리게 된 상황인 데다가 사실 그녀는 열차 안의 삶에 대해서 불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아니니까요. 굳이 밖으로 나가거나 열차를 세워야 할 목적 같은 것이 없는 사람입니다. 흙이 뭔지 모르는 이 낯선 소녀의 느낌은 아름답기까지 합니다. 그리고 생각 외로 잔인하기까지 한 소녀입니다. ‘남궁민수’는 계속 그녀가 잔인한 것을 보지 못하게 막으면서 그녀의 살인을 막으려고 하지만 정작 ‘요나’는 그러한 것에 대한 부담이 없으니까요. 뭔가 묘하게 엉뚱하고 별로 도움이 안 되면서 별로 주눅이 들지 않고 열심히 행동하는 것이 일단 여태 나오는 영화들의 여성 캐릭터랑은 다른데 이 부분은 좋더라고요. 보통 영화에서 여자 아역은 늘 민폐에 사고뭉치니까요. 다소 만화적인 캐릭터이지만 현실적이게 된 것은 ‘고아성’ 덕인 것 같습니다.
열차의 2인자 총리 역의 ‘틸다 스윈튼’의 경우에는 매우 독특하면서도 묘한 느낌의 배우입니다. 일부러 더 심한 영국 사투리를 썼다고 하는데 실제로도 그 느낌이 물씬 묻어납니다. 기차 안의 환경에 대해서 만족을 하면서 동시에 자신의 안위를 우선으로 생각을 하기도 하는 인물입니다. 꽤나 이기적인 느낌의 역할이라고 하면 맞을까요? 게다가 볼북복 정신의 나만 아니면 돼. 꼭 너여야만 해.의 느낌을 주기도 하고요. 영화의 다소 우스운 부분은 모두 이 역할이 만드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아무래도 그 닫힌 공간 안에서도 자신의 특권 의식을 놓치 않으려는 것. 끝까지 자신은 죽지 않을 거라는 생각을 하는 그 모습이 묘한 아니러니를 불러일으키는 것 같습니다. ‘옥타비아 스펜서’가 맡은 ‘타냐’의 경우에는 아이를 잃은 엄마의 모성애를 진하게 보입니다. 유일하게 여성으로 개혁에 처음부터 들어서는 인물인데 아무래도 아이를 잃은 그 괴로움 때문인 것 같습니다. 한쪽 눈이 다친 상태로도 버텨내는 그녀의 거대함과 아름다움은 이 영화에서 그 어떤 배역보다도 크게 다가옵니다. ‘존 허트’는 또 다른 지도자 ‘길리엄’ 역인데 노쇠하고 제대로 걷지도 못하면서도 숭고합니다. 특히나 그가 숭고한 이유가 후에 나오는데 그 이유까지 보게 되면 이 역할이 더욱 커다랗게 느껴집니다. 그다지 많은 대사는 아니지만 존재 자체로 빛이 납니다.
굉장히 모호하면서도 낯선 이 영화. 나쁜 영화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마구 추천하기도 그래요. [레 미제라블]의 경우에 그래도 어딘지 모르게 흥미로운 구석이 있었잖아요. 그런데 [설국열차]의 경우에는 이러한 흥미로운 부분이 거의 없습니다. 일단 우리 사회를 있는 그대로 보이는 점이 더 큰 이유가 아닐까 싶습니다. 게다가 이야기가 조금 지루하게 느껴집니다. 생각보다 기차 앞으로 나가는 모습이 쉽게 보이기도 하고요. 그리고 기차가 모두 다르게 꾸며진 것 역시 나중에는 그다지 신기하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이 영화 어딘지 모르게 ‘박찬욱’ 감독의 [스토커]가 생각이 나기도 합니다. 가장 순결하고 고귀하기만 한 존재가 성장을 하게 되는 이야기니까요. 궁극적으로 결국에는 [설국열차]도 ‘고아성’이 맡은 ‘요나’의 성장담이 되어버렸으니까요. 뭐 이러한 것이 나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결정적으로 한 가지가 아쉬운데 바로 주인공이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다는 거죠. 특히나 결정적인 순간에 버벅이는 의지박약이라니. 흐음. 뭔가 빠진 느낌이라고나 할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좋은 영화인 이유는 한정된 공간을 아주 효과적으로 사용했다는 점. 그리고 충분한 의미를 담았다는 겁니다. 지루하면서도 흥미롭고 많은 질문을 던지는 매력적인 [설국열차]로 여름나기 어떠신가요?
2008년 2009년 2010년 2011년 2012년 다음 우수블로거 권순재 ksjdoway@hanmail.net
Pungdo: 풍도 http://blog.daum.net/pungdo/
맛있는 부분
하나 – 기차 안의 아쿠아리움
둘 – 흙을 맛보는 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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