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설 완결/어쩌다 우리[완]

[로맨스 소설] 어쩌다 우리 3 [43장. 고백 3]

권정선재 2017. 9. 1. 23:54

43. 고백 3

엄청난 돈이 들 겁니다.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금액이 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것을 쓸 겁니다. 단순히 제 아들이 거기에 있다고. 그 사람을 구하기 위해서 그 돈을 쓰는 건 아닙니다.”

 

대통령은 잠시 말을 멈추고 카메라를 응시했다.

 

대한민국은 국민을 버리지 않습니다. 단 한 사람의 국민이라도 구하기 위해서 나설 겁니다.”

 

대통령은 주먹을 살짝 쥔 채 엷은 미소를 지었다.

 

절대로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것을 후회하게 하지 않을 겁니다. 더 이상 사람들이 헬조선이라고 하며 탈반도라는 말을 하지 않게 할 겁니다. 적어도 이런 일에서는 물러섬이 없을 겁니다.”

 

대통령은 카메라들을 모두 응시했다. 그리고 숨을 살짝 쉰 후 조금 더 확신에 찬 표정을 지었다.

 

지금도 청와대 앞에서 시위를 하시는 분들을 알고 있습니다. 그 분들의 말이 무엇인지도 알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이 지금 그런 곳에 돈을 쓸 일이 아니다. 그런 말을 하시는 것이겠지요.”

 

앞에 비서관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대본에 적히지 않은 말이었다. 대통령이 자기 멋대로 말을 하기 시작한 거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런 일들을 외면할 수 없습니다. 사람을 구하는 신념과 구하지 말라는 신념이 부딪치면. 과연 우리는 어느 신념을 선택해야 합니까? 어느 신념이 과연 인간으로 옳은 겁니까?”

 

대통령은 연단 옆으로 나왔다.

 

부디 사람들을 구하게 해주십시오.”

 

대통령은 그대로 깊이 허리를 숙였다. 플래시 세례가 터지기 시작했다.

 

 

 

이 배로 정말 갈 수 있는 거예요?”

. 그럼요.”

 

배를 보고 있던 지아는 진영이 다가오자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진영은 입술을 쭉 내밀었다.

 

믿음이 안 가는 거 알죠?”

알죠.”

하여간.”

 

지아가 간단히 말하자 진영은 볼을 부풀린 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마음에 안 들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도대체 왜 숨긴 거예요?”

그러게요.”

언니.”

 

진영의 말에 지아는 혀를 내밀었다.

 

미안해.”

정말.”

 

지아가 너무 간단히 사과하니 진영은 마치 자신이 나쁜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진영은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숙였다.

 

아무리 그래도 이건 아니었죠. 우리는 같이 살고자 하는 사람들인데 숨기면 안 되었던 거죠.”

하지만 그 상황에서 모든 것을 다 말할 수도 없었으니까. 그건 너희들도 마찬가지 아닌가?”

그건.”

 

진영은 순간 할 말을 잃었다. 섬을 나가는 방법을 제대로 말하지 않은 것은 자신들도 마찬가지였다.

 

결국 모두 같은 선택을 하는 거야. 각자가 선택하는 것을 따르는 거고. 그건 잘못이 아니야.”

그렇죠.”

 

진영은 입을 내밀고 고개를 끄덕였다. 누구 하나 그것을 잘못이라고 말을 하는 사람은 없을 거였다. 다만 그것으로 인해서 서운하다는 것까지 부정해야 한다면 그것이야 말로 잘못일 거였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은?”

모르겠어요.”

 

진영은 솔직하게 대답했다.

 

다들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그래?”

 

진영은 머리를 넘기고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한숨을 토해낸 채로 고개를 푹 숙였다.

 

이런 저런 사정들이 있으니까.”

그래도 신기해요.”

뭐가? ?”

. 언니.”

 

진영의 말에 지아는 입을 살짝 내밀었다.

뭐가 신기할까?”

이 상황에서도 망설임이 없으니까?”

망설여. 지금도.”

 

지아는 배를 만지며 고개를 저었다. 뭔가 더 걱정이 되고 자꾸만 무서운. 그런 순간들의 연속이었다.

 

되게 멍청한 고백이기는 한데 지금 나는 아무런 자신감도 없어. 자꾸만 무섭고 그렇단 말이야.”

언니가 그러면 어떻게 해요?”

그러게.”

 

지아는 혀를 내밀고 씩 웃었다.

 

그 모든 시간들이 과연 어떻게 다다르게 되는 것인지도 모르겠고. 너무나도 어렵고 힘든 순간들이야.”

언니도 그렇구나.”

 

진영은 숨을 크게 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들 그런 생각을 한다는 거. 여러 가지 이야기들의 연속이었다. 그때 멀리서 봄이 다가왔다. 봄은 잠시 지아를 보고 멈칫하더니 진영의 곁에 섰다.

 

그래도 그나마 나를 믿어주는 두 사람이 여기에 있네. 그것만 생각해도. 조금은 나은 거 같다.”

낫긴요.”

 

지아의 대답에 봄은 살짝 민망한 표정을 지었다. 자신도 결국 다른 이들과 다를 것은 하나 없었다.

 

우리도 언니를 얼마나 원망하고 있는데.”

그래?”

 

지아가 웃음기를 가득 띄운 채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그럴 거였다. 누구라도 그럴 거였다.

 

그럴 수 있지.”

화도 안 나요?”

?”

우리가 언니를 안 믿는 건데.”

그러게.”

 

지아는 혀를 내밀고 씩 웃었다. 자신을 믿지 못한다는 거였다. 화가 나도 되는 거였다. 하지만 화가 나지 않았다.

 

내 실수니까.”

아니죠.”

 

봄은 자신의 머리를 마구 헝클고 고개를 저었다. 굳이 지아를 위로하고 싶지 않았지만 몰아세우고 싶지도 않았다.

 

이건 언니 잘못이 아니니까.”

?”

맞아요. 우리도 숨겼지.”

 

진영의 대답에 지아는 엷은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말해주면 고맙고.”

언니 마음이 편하라고 하는 거 아니에요. 이렇게 말을 해야 우리 마음도 편한 거니까 그런 거죠.”

그래. 그럼.”

그건 그렇고.”

 

순간 진영이 미간을 모은 채 목소리를 낮췄다.

 

정말 그 두 사람도 데리고 갈 거예요?”

그래야지.”

아니요.”

 

봄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그 어느 때보다 단호한 봄의 표정에 지아는 침을 꿀꺽 삼켰다. 진영도 옆에서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 사람들 아무도 감당하지 못해요. 아무도 감당할 수 없는 사람들 데리고 가서 뭐 하자고요?”

그렇다고 해서 두고 가는 것도 답이 아니지 않나? 결국 그들도 우리와 같이 구조를 받아야 하는 건데.”

그러니까. 구조를 받으면 되는 거죠. 우리가 굳이 그 사람들을 구해주거나 할 이유는 없는 거잖아요.”

그건 아니지.”

왜요?”

같이 살아난 거니까.”

싫어요.”

 

봄은 입술을 꾹 다물고 고개를 저었다. 그들은 인간이 아니었다. 그들과 다른 종류의 사람들이었다.

 

우리를 얼마나 위협하고 그런 줄 알아요? 그런데 그 사람들을 그냥 데리고 가자는 거 아니잖아요.”

하지만 그들을 여기에 두고 가는 거. 그거 한구겡서 다 물을 텐데. 그거 감당할 수 있겠어?”

당연하죠.”

 

진영의 대답에 지아는 아랫입술을 꼭 물었다. 그들이 태욱과 석구에 대해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고 있지만 이건 아니었다.

 

나는 임길석 씨도 데리고 갈 생각을 하는데?”

그게 누구. .”

 

진영이 입을 벌렸다. 지아는 가볍게 머리를 뒤로 넘긴 채 이리저리 목을 푼 후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알고 있어. 나도. 미친 거라는 거.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사람을 무조건 두고 가는 것도 아닌 거 같아서.”

하지만 시신이잖아요.”

그렇지.”

그것도 살인자고.”

그것도 그렇지.”

 

지아는 혀를 살짝 내밀었다. 살인자라는 말을 듣는 순간 뭔가 더 공포스럽게 다가오는 게 있었다.

 

하지만 그도 결국 실종자야. 한국에서는 그 사람을 기다리는 누군가가 있겠지. 누군가가 기다릴 거야.”

하지만 범죄자에요.”

그래도.”

언니는 이상해요.”

 

봄의 말에 지아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생각해도 자신은 너무나도 이상한 생각을 하는 중이었다. 한국에서라면 절대로 이런 종류의 생각들은 하지 않았을 것이기에 더욱 낯설었다.

 

그 사람들을 데리고 가다고 해서 다른 사람들이 고마워할 거라는 생각을 하는 거 아니죠? 다들 언니만 뭐라고 할 거예요.”

알아.”

아는데도 한다고요?”

당연하지.”

 

지아는 잠시도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내가 믿는 신념이라는 게 그런 거거든. 어떤 사람이라도 우리는 그 사람을 판단할 자격은 없어.”

적어도 누군가를 죽인 사람이라면. 누군가에게 위협을 가한 사람이라면 두고 가도 되는 거라고요.”

아니.”

 

지아는 힘을 주어 고개를 저었다. 설사 그런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놓고 살 수는 없었다. 생각도 하기 싫었지만 길석이 살아있었다고 하더라도 그를 두고 가자는 말은 하지 않을 거였다. 그건 아니었다.

 

임길석 씨의 생존 유무와 관계없이 나는 그 사람을 데리고 가자고 했을 거야. 차석우 씨도 그렇고.”

. 그 언니 남편.”

. 기쁨 씨 신랑.”

 

세 사람 사이에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각자 생각하는 것이 다른 거였다. 서로의 생각이 이리도 달랐다.

 

그게.”

 

봄이 무슨 말을 하려고 하자 지아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굳이 말하지 마.”

하지만.”

말하지 마.”

 

지아는 다시 한 번 힘을 주어 말했다.

 

제발 말하지 마.”

나는 무서워요.”

 

결국 봄이 먼저 입을 열었다. 지아는 한숨을 토해냈다. 이해가 안 가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불편한 것도 사실이었다.

 

그래도 가엽잖아. 불쌍하잖아.”

아무리 그래도 무섭잖아요.”

저도 무서워요.”

 

진영까지 보태자 지아는 고개를 푹 숙였다.

 

그게 어떻게 무서워?”

모두 느끼는 게 다를 수 있죠.”

아니.”

 

진영의 말에 지아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사람이면 그러면 안 되는 거야.”

? 그게 무슨?”

지금 당장은 겁이 나겠지. 하지만 적어도 사람이라면 그러면 안 되는 거라고. 같은 사람이니까. 결국 여기에 같이 온 사람들이니까. 우리는 그들을 무서워하거나 피하려고 해서는 안 되는 거야.”

 

지아의 진지한 말 이후에 두 세 사람 사이에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절대로 달라지지 않을 세 사람의 다른 생각. 그게 지금 여기에 있었다.

 

미안.”

 

지아는 이렇게 말을 하고 돌아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