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한 번째 이야기
쉬어가는 이야기. 하나 –
‘Rrrrrr’
이불 속에서 손이 하나 삐죽 나온다. 그 손은 더듬고 더듬어 침대 옆에 있는 알람 시계를 끈다.
‘Rrrrrr’
알람 시계를 끄기가 무섭게 다른 알람 시계가 울린다. 이번에는 반대 쪽에서 손이 하나 쑥 나와서 알람 시계를 꺼 버린다.
‘일어나!’
이번에는 또 다른 알람 시계다. 오른 손이 더듬 거려서, 침대 머리맡에 있는 알람 시계를 꺼버린다.
“린지. 아직도 자고 있는 거야?”
이번에는 사람이다. 금발에 늘씬한 여인이 방문을 벌컥 열고 허리에 손을 떡하니 올린다. 이불 속의 사람이 싫은 소리를 낸다.
“우웅, 로한. 나 5분만. 응?”
“린지 어서 일어나라고! 오늘 린지 너 시험 있다며?”
이불 속의 여인이 인상을 잔뜩 찌푸리며 일어난다. 허리까지 내려오는 긴 검은 머리, 백옥 같은 피부, 앵두 같은 입술, 오똑한 코, 갸름한 턱, 늘씬하고 낭창낭창한 몸매. 게다가 이불에서 나오는 숏 팬츠를 걸친 다리는 린지의 앞에 서 있는 로한과 비교해서도 전혀 꿀리지 않는다.
“하암. 알았어. 하여간 로한은 부지런하다니까.”
“네가 게으른 거야. 린지.”
린지가 기지개를 켠다.
“오늘 아침 메뉴는 뭐야?”
“김치 베이컨 스크램블 에그.”
“또?”
린지가 볼을 부풀린다.
“싫으면 린지가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요리하면 되잖아.”
“누가 싫대?”
린지가 투덜거리며 식탁에 앉는다.
“그러게 그냥 밥을 먹으면 되잖아.”
“알았어. 먹잖아. 로한 너 오늘따라 잔소리가 심한 거 같아. 너도 알잖아. 나 어제도 새벽 다서 시까지 과제 하다가 잔 거 말이야. 그런데 이 정도도 못 봐주는 거야? 너무하잖아? 안 그래?”
“네가 너무하지.”
로한이 인상을 찌푸린다.
“낮에 안 자고 과제를 하면 되잖아.”
“로한. 거듭 말하지만 나는 올빼미형 인간이라 밤에 공부해야 한다고. 그 정도도 이해해주지 못하는 거야?”
“린지 그건 핑계야.”
린지가 스크램블 에그를 입 안 가득 넣고 입을 삐죽거린다.
“그래, 로한 네가 짱이다.”
“그럼.”
로한이 싱긋 웃으며 주스를 따른다.
“여기.”
“고마워.”
“린지.”
“응?”
로한의 불음에 린지가 고개를 든다.
“왜?”
“집에 한 번 다녀와야 하는 거 아니야?”
“농담해? 여기서 한국까지가 그렇게 가까운 줄 알아? 비행기 삯이 얼마인데.”
“그래도, 벌써 두 달이나 흘렀다고, 너 대학에 합격했잖아. 아직 학기 시작 전이니까 한 번 다녀오지?”
“됐네요.”
린지가 싱긋 웃는다.
“2년 동안 빡세게 공부해야 해. 남들 4년 걸리는 거 해야하니까. 그래서 이렇게 하루도 쉬지 않고 공부하는 데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는 거야.”
“그런가?”
“그래.”
린지가 자리에서 일어난다.
“잘 먹었다.”
“또 자게?”
“조금만.”
로한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도대체 너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냥 두면 된다고.”
“알았어.”
린지가 싱긋 웃으며 방으로 들어간다.
“하암.”
린지가 하품을 하며 기지개를 켠다. 너무나도 피곤하다. 뉴욕에서의 생활이 도대체 어떻게 흘러갔는 지 모를 정도로 바쁘게 흘러갔다. 딱히 이뤄놓은 것은 없는데 하루하루 시간이 가는 느낌?
“나 참.”
린지는 포근한 이불에 몸을 집어 넣었다.
“하암.”
그리고 잠에 빠져 들었다.
“하암.”
기지개를 켜고 시계를 보니, 어느 덧
“후우.”
거실로 나오니 이미 로한은 일을 하러 나간 모양이었다. 로한은 린지와 동갑으로 현재 파트타이머로 일하고 있었다.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뭘 좀 해볼까?”
린지가 기지개를 켜며 인터넷을 킨다. 한국과는 다르게 느린 인터넷에 조금 답답하기도 하지만, 패션의 메카인 뉴욕이기에 이정도 불편함 정도는 감수할 수 있었다.
“흠.”
패션이라는 것은 공부를 하면 할수록 어려워지는 분야였다. 현실을 직시하는 능력과 그 것을 조화하는 능력 등이 필요했다. 그 만큼 어려운 분야였고, 린지는 그 것에 더욱 흥미를 가졌다.
“지금 한국은 몇 시지?”
새벽 한 시. 자신의 절친한 친구인 주연과 혜지는 잠을 자고 있을 시간이었다. 린지는 미소를 지으며 사진들을 바라보았다.
“하아.”
사진 속에서는 주연과 승연, 혜지가 해맑게 웃고 있었다.
“벌써 두 달이나 흘렀네.”
린지라는 이름을 가지고 산 지도 두 달. 이미 승연은 린지라는 이름에 익숙해 있었고, 린지라는 이름에 익숙해진 만큼, 뉴욕이라는 사회가 익숙해져 있었다. 재밌었고, 행복한 시간이었다.
“지원 오빠.”
하지만 뉴욕이라는 사회가 익숙하더라도 한 가지 익숙해지지 않는 것은 지원이 없다는 것이었다. 귀여운 부산 사나이 지원이 없는 승연의 삶은 지원이 있던 것의 절반도 되지 않는 행복이었다.
“후우.”
“카푸치노 톨로.”
“린지 기분이 왜 그래?”
“응?”
“기분이 별로 안 좋아 보여?”
“그냥 우울하네.”
린지가 미소를 지었다.
“향수병인가?”
“흠, 천하의 린지 네가? 향수병에 걸렸다고? 그 것도 뉴욕으로 온 지 두 달이 다 되어가는 시점에서 말이야?”
“이봐 유키. 그런 말은 직접 하는 게 실례라고.”
린지가 이상을 찌푸린다.
“아, 미안. 대신 그 커피는 내가 살게.”
“고마워.”
평범한 주택가. 오후 두 시의 스타벅스는 다소 한가했다. 그렇기에 린지가 이렇게 수다를 떨고 있을 수도 있는 거지만.
“린지 남자 친구가 있다고 했던가?”
“응.”
“아, 그랬구나.”
유키가 한숨을 쉰다.
“왜 그래?”
“아니, 다노부가 너를 소개시켜 달라고 해서.”
“다노부?’
린지가 고개를 갸웃한다.
“그게 누구야?”
“다노부를 몰라?”
“응.”
린지가 고개를 끄덕인다.
“다노부가 누군데?”
“음.”
유키가 인상을 찌푸린다.
“너 지금 다니는 어학원에 다니는 그 노란 머리를 하고 수염을 기르는 남자 있잖아. 코에 피어싱을 하고.”
“에? 그 난쟁이.”
“난쟁이라고?”
유키가 웃음을 짓는다.
“다노부의 키도 꽤나 큰 편에 속한다고. 174나 돼.”
“유키. 거듭 말하지만 한국에서는 180에 육박하는 남자도 널렸어. 그리고 나는 피어싱 한 남자 싫어. 게이 같잖아.”
“솔직히 나도 그래.”
린지가 싱긋 웃는다.
“그런데 다노부는 왜?”
“말�잖아. 너를 소캐시켜 달라고 한다니까.”
“그러니까 나를 왜?”
“모르지. 그거야 다노부 마음이니까. 뭐 네가 남자 친구가 있다면 당연히 상관이 없는 거니까. 내가 알아서 말할게.”
“그런데 다노부가 왜 너에게 부탁하는 거야?”
“아. 같은 일본인이잖아. 음, 우리도 한국인들처럼 작은 소모임 같은 것도 있고 말이야.”
“아 그래?”
린지가 잠시 고민에 빠진다.
“그러면 거절하면 네가 불편해지는 거 아니야?”
“응?”
“내가 나갈게. 그리고 나가서 잘 말할게.”
“정말 그래줄 수 있어?”
“당연하지.”
린지가 싱긋 웃는다.
“아, 어. 어서 와.”
“안녕? 다노부.”
린지가 싱긋 웃는다.
“나 이것저것 돌려서 말하는 거 정말 싫어해. 그러니까 단도직입적으로 말을 하겠어. 다노부 네가 나를 좋아한다고?”
“응?”
다노부가 얼굴이 붉어져서 고개를 끄덕인다.
“으, 응.”
“이거 어쩌지?”
“응?”
다노부가 린지의 말에 고개를 든다.
“그, 그게 무슨 말이야?”
“유키가 간절히 부탁을 해서 나오기는 했는데 말이야. 이러는 편이 너에게도 굉장히 좋을 거 같아.”
린지가 다노부의 얼굴에 찬 물을 끼얹는다.
“이래야 네가 나에 대한 미련이 없어지겠지? 정말 미안하지만, 나 너 같은 남자에게 별 관심 없어. 미안.”
린지가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리고 나 남자 친구 있으니까, 앞으로 유키에게 그런 난감한 부탁은 하지 말아줬으면 좋겠어.”
린지가 다노부의 곁을 지나가다 멈칫한다.
“아, 그리고 말이야. 네가 모르는 거 같아서 말해줄게.”
“?”
다노부가 린지를 바라본다.
“특히나 자기가 좋아하는 남자에게 다른 여자를 소개해달라는 이야기는 하는 게 아니야.”
“!”
린지가 미소를 지으며 카페를 나온다.
“후후.”
린지가 선글라스를 벗는다.
“
승연이 다시 선글라스를 쓴다.
‘또각또각’
뉴욕의 거리로 린지의 발걸음 소리가 울려퍼졌다.
19살. 여자
타고난 몸매를 지닌, 퀸카. 주연과 혜지의 오랜 단짝 친구다. 그녀의 인기는 학창시절부터 유명했다. 하지만 아름다운 외모와는 다르게, 연애 경험은 딱 한 번뿐이다. 자신이 직접 찍은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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