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랑해!
- Season 2 -
스물일곱 번째 이야기
안녕, 사랑아!
“어, 어머니.”
“좀 들어가자.”
병환의 자취방까지 찾아오신 어머니다.
“여, 여기까지는 어떻게?”
“어미가 아들 사는 곳도 못 찾아 오니?”
“그, 그런 건 아니지만.”
어머니가 집에 들어서시고, 크게 한숨을 내쉰다.
“그래, 어떻게 오셨어요?”
“너 장가 보내려 왔다.”
“네?”
어머니의 눈빛이 단호하다.
“그,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무슨 말이기는? 네 나이도 지금 벌써 몇이냐? 네 친구, 걔 누구야? 그래 신일하. 그 녀석도 벌써 애가 둘이라며.”
“걔는 좀 특이한 녀석이고요.”
“됐다. 두 말 할 것 없어.”
어머니도 단단히 벼르고 온 모양이다.
“올해 안으로 나는 며느리 봐야 겠다.”
“어머니.”
“그만 불러.”
어머니가 병환을 바라본다.
“네 여자 친구. 그래 혜지?”
“예.”
병환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 여자 애 좀 불러 봐라.”
“네?”
“혜지 그 여자애 좀 불러보라고!”
“혜, 혜지는 왜요?”
“너하고 결혼할 맘 있는 지 물어보려고 그런다. 응?”
“엄마.”
“어서!”
“어머니가?”
주연이 혜지를 쳐다본다.
“그, 그래.”
혜지가 조심스럽게 전화를 닫는다.
“하아.”
“무슨 일이야?”
“병환 오빠, 어머니가 좀 보시재.”
“그, 그래? 무, 무슨 일로?”
“몰라.”
혜지가 잔뜩 울상을 짓는다.
“미안해. 주연아. 네 고민은 다음에 들어줄게.”
“그, 그래.”
주연이 고개를 끄덕인다.
“어서 가 봐.”
“미안.”
“휴.”
혜지가 멀어지는 모습을 보며 주연이 한숨을 쉰다.
“나도 지금 무지하게 급한 고민인데.”
주연이 탁자에 엎드린다.
“오, 오빠.”
“미안.”
병환이 난처한 표정을 짓는다.
“혜지 왔니?”
“아, 어, 어머니.”
혜지가 무릎을 꿇고 어머니의 앞에 앉는다.
“아, 안녕하세요.”
“그래, 두 번째 보는 거지?”
“아, 네.”
병환의 입사날 한 번 본 적이 있다.
“저, 저는 어쩐 일로?”
“혼사 일로다.”
“네?”
혜지가 놀란 눈으로 병환을 바라본다.
“호, 혼사라니요?”
“지금 너도 알다시피, 병환이의 나이가 나이지 않니?”
“아.”
“솔직한 어미 된 마음으로는 어서 병환이의 혼사를 서둘렀으면 하는 구나.”
“엄마.”
“너는 가만히 있어.”
어머니가 매섭게 병환을 노려본다.
“혜지 네 생각은 어떠니?”
“네?”
“병환이와 혼인할 마음이 있냐는 말이다.”
“그, 그야 당연히.”
“그래?”
어머니가 미소를 짓는다.
“올해 안에?”
“네?”
혜지의 눈이 동그래진다.
“무, 무슨?”
“지금 병환이의 나이가 스물 여덟이다. 서른이 되기 전에는 손주를 봐야 하지 않겠니? 그러니, 너 올해 안에 병환이와 혼사를 할 마음이 있냐?”
“그만 하세요!”
“뭘 그만해?”
어머니가 혜지를 바라본다.
“어서 대답해보거라.”
“엄마.”
“나서지 말래도!”
혜지가 입술을 깨문다.
“왜 대답을 하지 못하는 게냐?”
“어머니, 솔직히 병환 오빠와 결혼을 할 마음을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그 결혼이 올해 안이라고는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그래?”
어머니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면 병환이와 헤어지거라.”
”네?”
“엄마!”
“헤어져.”
어머니가 혜지를 매섭게 바라본다.
“나는 며느리가 필요하다. 내 아들의 여자 친구는 필요가 없어. 이미, 병환이와 혼사를 맺고 싶다고 하는 사람들이 줄을 섰어. 우리나라에서 손에 꼽히는 K대를 나와서 삼성에 취직을 한 그런 재원이다. 우리 병환이 어디 내놔도 밀리지 않아. 그러니 나는 병환이를 결혼 시키려 한다.”
“엄마.”
“그러니 대답하거라.”
어머니가 매섭게 다그친다.
“죄송 합니다.”
“혜지야!”
“오빠 미안.”
혜지가 어머니를 바라본다.
“솔직히 답하겠습니다. 저 병환 오빠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 제 인생의 전부를 걸 만한 그런 남자인 지는 모르겠습니다.”
“흐음.”
“하지만, 하지만 조금만, 아주 조금만이라도 더 시간을 주신다면.”
“됐다.”
“!”
“가봐도 좋다. 병환이 너는 따라가지 말아!”
병환이 외투를 걸치자, 어머니가 병환을 노려본다.
“어머니.”
“어서 안 가고 뭐하는 게야?”
“예.”
혜지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럼 가보겠습니다.”
혜지가 꾸벅 고개를 숙인다. 그리고 천천히 돌아선다.
“혜지야!”
병환의 부름에 혜지가 병환을 향해 몸을 돌린다. 그리고 힘없이 싱긋 미소를 짓는다.
“혜, 혜지야.”
“나 갈게.”
“!”
혜지가 조용히 집을 빠져 나갔다.
“하, 하아.”
“지금 들었지.”
어머니가 당당한 표정을 짓는다.
“어서 혼사할 아가씨부터 구하자.”
“!”
“이미 이 엄마가 몇몇 사람들을 다 알아봤어.”
“다 필요 없다고요!”
병환이 집을 뛰쳐 나간다.
“벼, 병환아.”
“흐윽, 그래. 내 주제에 무슨.”
혜지가 눈물을 닦고 미소를 짓는다.
“후우,
“혜지야!”
순간 들리는 목소리.
“!”
혜지가 조심스럽게 돌아선다.
“오, 오빠.”
“혜, 혜지야.”
“?”
병환이다. 병환이 서 있다.
“여기, 왜 왔어?”
“미안, 우리 어머니가.”
“아니.”
혜지가 미소를 짓는다.
“어머니 말씀 당연한 거야?”
“어?”
병환의 눈동자가 커다래진다.
“그, 그게 무슨 말이야?”
“어머니 말씀 당연하잖아.”
혜지가 싱긋 웃는다.
“이제 오빠 나이도 서른이 다 되어 가잖아.”
“혜지야.”
“우리 현실을 직시하자.”
“!”
“나 갈게.”
혜지가 애써 미소를 지으며 돌아 선다.
“혜지야.”
“오빠.”
혜지가 등을 보인 채 입을 열었다.
“우리 너무 힘들었잖아.”
“!”
“나이 차도 너무 많이 나고 말이야. 미안.”
“혜, 혜지야!”
혜지가 발걸음을 옮겼다.
“하아.”
길을 걷던 혜지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 내렸다.
“
혜지가 깊은 심호흡을 한다.
“바보, 바보.”
혜지의 눈에 굵은 눈물 방울이 맺혀 있다.
“그래도, 그래도 한 번 쫓아 와 보지.”
혜지가 손등으로 눈물을 닦아 낸다.
“바보 같은 사람.”
혜지가,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후우.”
병환이 벤치에 무너져 앉았다.
“도, 도대체.”
무엇이 잘못이었던 것일까?
“후우.”
잘 사귀고 있었는데, 그런 건데. 모든 게 어머니 탓인 걸까? 아니다. 병환은 고개를 저었다. 분명, 분명 혜지의 입으로 결혼은 무리라고 말했다. 물론 결혼이 이르기는 했다. 하지만 그 동안의 연애가 그렇게 안전하다고만은 느끼지 못했었다. 그랬었지만, 그래도, 그래도 그랬었지만 이렇게 갑작스러운.
“하아.”
병환이 머리를 숙인다.
“후우.”
머리가, 머리가 아프다.
“돼지 치킨 먹어.”
“생각 없어.”
“어?”
대연의 눈동자가 커다래진다.
“뭐, 뭐라고?”
“생각 없다고.”
“에?”
주연의 무뚝뚝한 말에 대연의 눈동자가 커다래진다.
“아, 아니 지금 치, 치킨을 시켰다고. 지금 누나가.”
“그러니까 생각 없다니까! 당장 나가!”
주연이 대연에게 베개를 던진다.
“아, 안 먹을 거면 말지.”
대연이 볼멘 소리를 하고 방을 나간다.
“후우.”
주연이 머리까지 이불을 뒤집어 쓴다.
“누나는?”
“안 먹는데.”
“어?”
화영의 눈동자가 커다래진다.
“뭐라고? 주연이가, 치킨을 안 먹는다고?”
“그러니까.”
대연이 미간을 찌푸린다.
“무슨 일이지?”
“어디 아픈가?”
“그러게.”
“이 아가씨 어떠냐?”
“엄마.”
“이 아가씨도 참 참해.”
“엄마!”
“이 아가씨는.”
“어머니!”
결국 참다 못한 병환이 소리를 지르고 만다.
“왜 소리는 지르고 난리야.”
“도대체 왜 이러시는 거예요?”
“뭐가?”
어머니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는다.
“도대체, 도대체 왜 이러세요? 어머니 안 이런 분이셨잖아요. 당신 아들 행복 위해서 모든 걸 다 해줄 수 있는 분이라 하셨잖아요. 그런데 왜 이러세요? 네? 도대체 왜 갑자기 이러시는 거예요?”
“손주가 보고 싶어서 그래!”
“혜지랑, 혜지랑 결혼하면 되잖아요.”
“걔는 안 된다.”
“엄마.”
어머니는 단호하다.
“어머니.”
“안 되는 건 안 돼!”
부산한 인천 국제 공항.
“선재야.”
가인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선재를 부른다.
“정말 혼자 괜찮겠어?”
“네.”
선재가 미소를 짓는다.
“나는 엄마랑 Dr. Jason, 아, 아니.”
선재가 고개를 젓는다.
“엄마랑 아버지가 걱정이 되요.”
“!”
Dr. Jason의 얼굴에 감격한 기색이 역력하다.
“우리 아버지. 엄마 맛 없는 요리 드시고, 식중독이라도 걸리시면 어떡해? 안 그래요?”
“그건 그래.”
“뭐라고요?”
가인이 미소를 짓는다.
“우리 아들 다 큰 건 아는데, 그런데도 걱정이다.”
“걱정 그만 하세요.”
선재가 미소를 짓는다.
“엄마 사랑해요.”
“나도.”
선재와 가인이 꼭 끌어 안는다.
“엄마 비행기 시간 다 되셨어요.”
“그래.”
가인이 고개를 끄덕인다.
“엄마, 다녀 올게.”
“네.”
가인과 Dr. Jason이 게이트 사이로 사라진다.
“후후.”
선재가 미소를 짓는다.
“엄마 아빠 꼭 행복하세요.”
“하아.”
지현이 한숨을 쉰다. 준오가 가게 앞에 있다.
“
“?”
준오가 천천히 고개를 돌린다. 그리고 지현을 발견하고 미소를 짓는다.
“
“매일 온 거예요?”
“네.”
“하.”
지현이 헛웃음을 터뜨린다.
“참 바보 같아요.”
“네.”
준오가 고개를 끄덕인다.
“저도 제가 이렇게 끈질길 수 있는 놈일 줄 몰랐어요.”
“좋아요.”
지현이 고개를 끄덕인다.
“나도 사랑이라는 거 믿지 않거든요. 그런데 말이에요.”
지현이 싱긋 웃는다.
“권준오라는 사람은 한 번 믿어볼래요.”
“!”
준오의 눈동자가 커다래진다.
“그, 그말은.”
“우리 사귀자는 뜻이에요.”
지현이 미소를 지었다.
“후우.”
혜지가 상자 속에 병환과의 추억들을 차곡 차곡 담는다.
“흐윽.”
자꾸만, 보면 눈물이 날 것이 분명하기에, 하나도 남김 없이 차곡차곡 다 정리해 버린다.
“하아.”
그 동안 병환과 사귄 기간을 생각하면 너무나도 많은 짐들이 나올 것 같았는데, 모두 담아 보니 상자 하나 뿐이었다. 겨우, 겨우 그 것 뿐이었다. 혜지는 모든 것을 정리하고 방을 둘러 보았다. 그런데 방 전체가 병환과의 추억이다.
“하아.”
모든 게 추억들이다.
“뭐야? 미치겠네.”
혜지가 입술을 꼭 깨문다.
“정말 사랑하는 데, 뭐가 상관이야.”
주연이 이불을 걷었다.
“야, 돼지 어디가?”
“엄마, 나 좀 어디 다녀올게요.”
그리고 밖으로 뛰쳐 나간 주연이다.
“여보세요?”
‘나예요.’
“주연 씨?”
주연의 조금은 다급한 목소리. 선재는 고개를 갸웃한다.
“무슨, 말이에요?”
“지금 좀 만나요.”
“지금요?”
선재가 시계를 본다.
”많이 늦었어요.”
“아니요. 저는 지금 선재 씨를 꼭 봐야 해요.”
“후우.”
선재가 한숨을 내쉰다.
“좋아요. 내가 지금 그리로 갈 게요.”
“그럴 필요 없어요.”
“네?”
선재가 고개를 갸웃한다.
“그, 그게 무슨?”
“뒤를 돌아봐요.”
뒤를 돌아 서니, 주연이 서있다.
“!”
선재의 눈동자가 커다래진다.
“주, 주연 씨.”
“그래요. 우리 같이 살아봐요. 뭐 문제 있겠어요? 까짓 것. 남들 다 하는 동거. 우리도 한 번 하자고요.”
“!”
“서로 사랑하니까.”
주연이 싱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네. 우리 사랑하니까.”
선재도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주연 씨.”
“네.”
“오늘 그 어느 때보다 사랑스러운 거 알아요?”
선재가 주연을 꼭 안는다.
“사랑해요.”
“저도요.”
‘딩동’
혜지일까? 병환은 황급히 휴대전화를 열었다.
“!”
‘
“하아.”
정말, 정말 끝이다. 정말로. 병환은 크게 심호흡했다.
“흐윽.”
혜지가 손등으로 입을 꽉 틀어 막았다. 바보 같이 더 울면 안 되는데. 그러면 안 되는데, 자꾸만, 자꾸만 눈물이 났다. 자꾸만.
“하아.”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다.
“서우 씨.”
“네?”
퇴근을 하려는 서우를 소은이 부른다.
“무슨 일이에요?”
“우리 잠시만 이야기 할래요?”
“이야기요?”
“네.”
서우가 고개를 끄덕인다.
“우리 가까운 카페라도 가요.”
“그러죠.”
“저를 좋아해주시는 건 정말 고마워요.”
자리에 앉자 마자 소은이 직접적으로 말을 꺼낸다.
“하지만 말이죠.”
소은이 서우를 바라본다.
“부담스러워요. 저는 그냥 우리가 좋은 직장 동료였으면 해요.”
“소은 씨.”
“네?”
서우의 부름에 소은이 고개를 든다.
“내가 그런 말을 하면 포기할 거 같아요.”
“가, 강대리 님.”
“저 이미 그 정도는 각오 했거든요.”
서우가 씩 웃는다.
“내가 겨우 이 정도로 포기할 거라고 생각했단 말이에요? 그렇다면 소은 씨는 저 강서우라는 사람을 너무나도 쉽게 보신 거예요. 저 진심이에요. 제가 소은 씨를 생각하는 마음은 진심이에요.”
“서, 서우 씨.”
“이 진심이 그렇게 쉽게 변할 수 있는 거라고 믿는 거예요? 그렇다면 소은 씨 큰 착각이에요.”
서우가 미소를 짓는다.
“소은 씨.”
“아, 네.”
“아주 천천히, 천천히 다가갈 거예요.”
“!”
“소은 씨의 마음이 열릴 때 까지요.”
“서, 서우 씨.”
“그리고 지금 꽤나 많이 열렸다는 거 알고 있어요.”
서우가 장난스럽게 미소를 짓는다.
“언젠가 분명, 소은 씨 저를 사랑하게 되실 거예요.”
서우가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었다.
<우리, 사랑해! season 2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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