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세 번째 섬 2
“일단 이 섬이 원래 섬보다 나은 거 같죠?”
“그렇죠.”
지웅의 물음에 지아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사람들이 조금은 안도를 하는 것 같았다.
“전화는 아직도 안 돼요?”
“네. 아직도 안 되네요.”
하루가 지났건만 아무런 변화도 없는 거였다. 지아는 답답한 표정이었다. 이러면 안 되는 거였다.
“걱정하지 마요.”
“죄송해요.”
“아니요.”
지아의 사과에 지웅은 고개를 저었다. 이건 지아가 사과를 할 일이 아니었다. 아무도 모를 일이었으니까.
“지금 당장 전화기가 켜지지 않는 거니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모르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너무 그러지 마요.”
“그냥 겁이 나잖아요.”
지아의 대답에 지웅은 어깨를 으쓱했다.
“아무튼 강지아 씨가 아니었더라면 우리는 여기에 올 생각을 하지 않았을 겁니다. 그러니까 너무 그러지 마요. 그리고 아마 배터리만 돌아오면 될 겁니다. 여기에서는 뭔가 좋아보여요. 그러니 걱정하지 마요.”
“네. 알았어요.”
지웅이 멀어지고 나서 지아는 한숨을 토해냈다.
“괜찮아요?”
“네. 괜찮아요.”
윤태는 과일을 옆에 내려놓으며 지아의 곁에 앉았다. 지아는 눈을 반짝이며 과일을 들었다. 다행이었다.
“그래도 여기에는 과일이 있네요.”
“그러게요. 우리가 원래 있던 섬보다 나은 거 같죠.”
“그렇죠.”
지아는 고개를 끄덕이다 아차한 표정을 지었다.
“서준 씨랑 세라 씨.”
“잘 지낼 거예요.”
“하지만.”
“괜찮을 거예요.”
윤태는 지아의 손을 꽉 잡았다. 지아의 몸이 다시 떨렸다. 윤태는 재빨리 지아의 어깨를 쓸어내렸다.
“왜 그래요?”
“내가 잘못한 거 같아요.”
“아니요.”
윤태는 고개를 저었다. 이건 지아의 잘못이 아니었다. 어차피 그 섬에 간다고 달라질 건 없었다.
“우리가 그 섬으로 다시 돌아가면 두 사람이 기대를 했을 거예요. 우리가 뭐가 성공한 줄 알고.”
“하지만.”
“안 간 게 다행이에요.”
윤태는 힘을 주어 말하며 지아와 눈을 마주했다.
“강지아 씨는 늘 보면 혼자서 뭐든지 다 해야 한다고 생각을 하는 거 같아요. 그럴 이유 하나도 없어요. 강지아 씨가 그런 것을 할 이유도 없고요. 해야 하는 이유도 없고. 하지 않는다고 해서 뭐라고 할 사람도 없어요. 그러니까 제발 ᅟᅳᆨ런 생각을 하면서 자꾸만 스스로 힘들게 하지 마요.”
“그러게요.”
지아는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자신이 해야 할 일이 아니었다. 그럴 이유도 없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뭐든지 다 자신이 해야 하는 거였고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기분이었다.
“너무 이상해요. 내가 뭔가 해야 하는 일을 하지 않은 기분이에요. 다들 내가 할 이유가 없는 거라고 하지만. 그런 게 어디에 있어요? 다 내가 해야 하는 거지. 내가 분명히 무슨 잘못을 한 거 맞아요.”
“아니라니까요.”
“됐어요.”
윤태가 지아를 위로하려고 했지만 지아는 윤태의 시선을 피했다. 윤태는 심호흡을 크게 하고 미간을 모았다.
“강지아 씨가 그런다고요?”
“네. 이상해요.”
지웅은 한숨을 토해냈다. 다들 새로운 섬에 오고 나서 흔들리는 거였다. 각자의 이야기를 하는 거였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강지아 씨가 너무 그러니까 걱정도 되고요. 이상해요.”
“아마 다들 그럴 겁니다. 새로운 섬에 와서 우리에게 달라진 상황이 주어지는 게 아니니까요. 아마 그게 문제가 되어서 그런 걸 거예요. 너무 걱정하지 마요. 곧 아무렇지도 않아질 거니까요.”
“그래도.”
“아니요. 그러지 마요.”
윤태가 무슨 말을 더 하려고 하자 지웅은 윤태의 눈을 보고 씩 웃었다.
“이 상황에서 이윤태 씨까지 흔들리면 안 됩니다. 지금 강지아 씨를 잡아줄 수 있는 사람은 이윤태 씨가 융리하니까요. 그러니까 너무 글저ㅣ 마요. 이윤태 씨는 할 수 있어요. 그러니 조금 더 힘을 내줘요.”
“네. 그래야죠.”
지웅은 가볍게 윤태의 어깨를 두드렸다. 윤태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사람들이 더 많이 지치는 거 같아요. 새로운 섬에 오면 뭔가 다른 일이 가능할 거라고 생각을 했는데 그런 일이 전혀 생기지 않으니까. 뭔가 문제가 생긴 것만 같고. 불안하고. 그런 거 같아요.”
“그렇겠죠.”
세연의 말에 윤한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다들 불안할 거예요.”
“윤한 씨도 그래요?”
“아무래도 그렇죠?”
윤한은 이렇게 대답하면서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그래도 누구 하나 원망하고 싶은 생각은 없어요. 이곳에 온 것은 나 스스로의 선택이니까.”
“정말로 윤한 씨의 선택이에요?”
“네. 그래요.”
윤한은 세연의 손을 조심스럽게 잡았다. 세연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은 채로 고개를 흔들며 한숨을 토해냈다.
“새로운 환경이라는 것이 너무 낯설어요. 그리고 우리가 이곳에서 뭘 할 수 있기나 한 건가 싶기도 하고.”
“그러지 마요.”
세연이 손에 힘을 주자 윤한은 작게 웃었다.
“그냥 그렇다고요.”
“그 그냥 그런 게 좀 그렇다고요.”
“그런가?”
윤한은 혀를 살짝 내밀었다. 세연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한숨을 토해냈다. 모두 다 긴장한 것으로 보였다.
“이게 뭐야?”
“뭐가?”
“아무 것도 없잖아.”
시안의 투정에 시인은 입을 다물었다. 시안은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리고 바닥을 가볍게 찼다.
“아니 새로운 섬에 오면 반드시 어떤 일이 벌어질 것처럼 말하던 사람들은 도대체 어디에 간 거야?”
“그런 사람은 없었어.”
시우의 차가운 말에 시안은 미간을 모았다.
“뭐가?”
“그렇게 꼭 말대답을 해야 해? 너를 믿고 온 거잖아. 그런데 아무 것도 달라진 거 없는 거잖아.”
“누나가 나를 믿고 와?”
시안의 말에 시우는 코웃음을 치며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한숨을 토해내며 입을 내밀고 고개를 저었다.
“누나는 한 번도 그런 적 없어. 늘 나를 위해서. 누군가를 위해서 뭔가 한 것처럼 말하지만 한 번도 그런 적이 없다고. 늘 누나가 하고자 하는 것을 그대로 다 했어. 그래놓고 다른 사람 핑계를 대지 마.”
“핑계라니.”
“둘 다 그만 둬.”
말이 길어질 것 같자 시인이 두 사람을 떨어뜨렸다. 시안은 머리를 뒤로 넘기며 시우를 노려봤다.
“네가 나에게 그러면 안 되는 거지.”
“뭐라고?”
“내가 너한테 어떻게 했는데? 너를 위해서 내가 뭘 어떻게 한 건데. 네가 어떻게 나에게 그럴 수가 있어?”
“누나가 하고 싶어서 한 거야. 나는 단 한 번도 누나에게 뭔가 바란 적 없어. 그건 누나도 아는 거 아닌가?”
“뭐라고?”
“라시우 너도 그만 해.”
시우는 자신의 머리를 마구 헝클었다.
“도대체 다들 왜 그러는 건지 모르겠어. 두 사람 다 이상하다고. 내가 원하는 건 이런 게 아니란 말이야.”
“그럼 네가 원하는 게 뭔데?”
“아니야.”
시우는 입술을 꾹 다물고 고개를 저었다. 무슨 말을 하려고 하다 입을 꾹 다무는 시우를 보며 시인은 한숨을 토해냈다.
“좀 괜찮습니까?”
“아. 네.”
지웅의 물음에 지아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무장님은 괜찮으세요.”
“잘한 거예요.”
“네?”
“너무 잘 했다고요.”
지웅은 지아를 보며 더욱 밝게 웃었다.
“사무장님.”
“다들 왔잖아요.”
“하지만.”
지아는 말끝을 흐리며 고개를 숙였다. 모두가 제대로 온 것은 아니었으니까. 뭐가 되었건 두 사람이 다시 낙오된 거였다. 더 이상 이런 희생은 원하지 않았는데 결국 그렇게 된 거였다.
“그건 강지아 씨의 잘못이 아니에요. 박석구 씨가 결정한 일이죠. 그리고 정태욱 씨도. 사실 우리에게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았을 겁니다. 모든 일에 대해서 불만을 갖고 있었으니까. 다행입니다.”
“아니요.”
지웅의 설득에 지아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단 한 사람의 낙오도 다행이라고 말을 해서는 안 되는 거였다.
“사무장님은 이미 알고 계시잖아요. 도대체 왜 그런 일이 생긴 것인지. 그게 어떤 의미인지 말이에요.”
“알고 있죠.”
지웅은 말끝을 흐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지아는 한숨을 토해냈다. 아무리 그래도 답답한 마음이 해결되지 않았다.
“정말 미칠 거 같아요.”
“강지아 씨가 왜요?”
“차라리 그 섬에 모두 있었더라면 이런 문제는 생기지 않았을 거예요. 그 두 사람도 같이 있을 거고요.”
“그러지 마요.”
지웅은 지아를 보며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지아는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숙였다. 지웅은 그런 지아를 걱정스러운 눈으로 쳐다봤다.
“아무리 누나라도 그럴 자격은 없어.”
갑자기 방에 불쑥 들어온 재호의 말에 재희는 묘한 표정을 지었다. 재호가 평소와 다른 느낌이었다.
“도대체 너 왜 그러는 거야?”
“표재호네.”
재희의 나른한 목소리에 재호는 침을 꿀꺽 삼켰다. 재희는 자리에 앉더니 이리저리 목을 풀었다.
“네가 여기에 무슨 일이야?”
“누나.”
“그만 해.”
재호가 무슨 말을 더 하려고 하자 재희는 손을 들었다. 재희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네가 무슨 말을 하건 나는 네 말을 듣지 않을 거야. 내가 왜 그래야 하는 건데? 나는 이해가 안 가는데?”
“그래서 무조건 싸운다고?”
“응.”
“엄마랑 싸우겠다고?”
“그래.”
재희는 덤덤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짧은 한숨을 토해냈다.
“그러는 엄마는? 아빠에게 뭘 하려는 건데?”
“그거야 누나도 알잖아.”
“됐어. 그럼 너는 엄마 편에 서.”
재호는 침을 꿀꺽 삼켰다. 한 가족이 이러면 안 되는 거였다. 하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자신도 쉽게 판단할 수 없었다.
“네가 바라는 거. 네가 하면 되는 거야.”
재희는 그저 여유로운 표정을 지을 따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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