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귀 거북이 붉은 귀 거북이 권순재 어릴 적 거북이를 죽인 적 있었다. 그러나 그 거북이를 죽을 때, 어떠한 악감정과 같은 것은 없었다. 아니, 오히려 너무나도 선했다. 너무나도 선해서 거북이를 죽였다. 한 겨울. 거북이는 추워보였다. 차가운 물 속. 거북이는 시려보였다. 나는 조심스럽게 손을 넣어, 그 거북이.. ★ 블로그 창고/시 읽는 하루 2009.12.07
여백 여백 권순재 어릴 적, 나는 여백을 너무나도 싫어했다. 도화지의 하얀 부분, 그 부분은 잘못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크레파스를 들었다. 그래서 나는 붓을 들었다. 남은 곳 하나 없이, 나는 점점 그곳을 차례대로 메꾸어 나갔다. 어릴 적 나는, 그 빈 부분이 죄악이라 생각했다. 그렇기에 나는 그 부.. ★ 블로그 창고/시 읽는 하루 2009.12.06
테트리스 테트리스 권순재 참으로 허무한 일이다. 참으로 허무한 일이다. 힘들게 모든 것을 쌓고, 다시 그것을 없애고, 마치 우리네 삶과도 닮아 있다. 색색의 그 조각들을 차곡차곡 맞추어놓으면, 마치 누군가가 일자 막대기라도 내려 주는 것처럼, 모두 한 순간 와르르 사라지고 말아버린다. 내가 그 동안 노력.. ★ 블로그 창고/시 읽는 하루 2009.12.05
모기에게 모기에게 권순재 네 모성에 놀란다. 사람에게 죽는 것을 알면서도, 그 날개가 가녀리게 흔들리면서도, 제 아이를 배불리기 위해, 제 알들을 배불리기 위해, 그 가녀린 다리로, 그 가녀린 날개로, 두꺼운 핏줄 위로, 그 가녀린 입술을 가져가는 너의 모습은 마치 성모와도 같다. 제 아이를 위해서 희생하.. ★ 블로그 창고/시 읽는 하루 2009.12.04
모기 모기 권순재 추운 날. 모기 한 마리가 휑 하니 날아 오른다. 눈까지 내렸는데, 이리도 추운 날인데, 모기는 아직 춥지 않은 모양이었다. 가녀린 날개로, 제 새끼를 배불리기 위해서 눈치를 살피며, 파르르 날개를 떤다. 가녀린 몸으로, 작은 틈이라도 파고들며, 탁한 공기 속을 헤매인다. 제 새끼를 먹이.. ★ 블로그 창고/시 읽는 하루 2009.12.03
백화점 사람들 2 백화점 사람들 2 권순재 백화점은 물건을 사기 위해서 가는 곳이다. 내가 가지고 있는 무언가를 더하기 위해서 가는 곳이다. 매일매일 좁은 집은 터져나가며, 그 곳을 더욱 좁게 만들기 위해서 가는 곳이다. 항상 돈이 없다고 울상을 지으면서, 마법의 카드 한 장. 그 카드에 모든 것을 걸고 백화점을 향.. ★ 블로그 창고/시 읽는 하루 2009.12.02
백화점 사람들 백화점 사람들 권순재 백화점은 늘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차가운 한파에도, 뜨거운 열기에도, 늘 백화점은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백화점 안으로 열을 지어가는 사람들을 보며, 백화점 앞 계단의, 껌 파는 노파는 물끄러미 슬픈 표정을 짓는다. 저 안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의 모습과, 자신의 초라한 모습.. ★ 블로그 창고/시 읽는 하루 2009.12.01
로맨틱 피플 6 로맨틱 피플 6 권순재 차가운 바닥. 도대체 얼마나 누워있던 것일까? 바닥에 고여있는 피가 나의 피인 것은 알았지만, 도대체 어디서 그렇게 피가 흐르는 것인지, 왜 아직도 피가 흐르는 것인지, 그 무엇도 알 수 없었다. 그저 내가 알 수 있는 사실은 나의 몸이 차갑게 식어가고 있다는 것. 나의 몸이 딱.. ★ 블로그 창고/시 읽는 하루 2009.11.30
로맨틱 피플 5 로맨틱 피플 5 권순재 무심코 고개를 돌리고, 숨을 한 번 헉 하고 들이켰다. 피가 낭자한 거리에, 피칠갑을 한 자가 앉아 있다. 그에게 조심스럽게 다가가려고 하지만, 온통 흘리는 피냄새에, 자꾸만 미간이 모아지고, 자꾸만 그에게서 등을 돌리게 된다. 그러나 조금 더 용기를 내어, 한 발, 겨우 더 내.. ★ 블로그 창고/시 읽는 하루 2009.11.29
잊지 말아요 잊지 말아요 권순재 잊지 말라는 말. 그 말을 할 때는 몰랐습니다. 그것이 얼마나 큰 고통인지, 사람이 사람에게 잊혀지지 않는다는 것이, 영원히 누군가에게 기억이 되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크고, 얼마나 아린, 그러한 상처인지 몰랐습니다. 헤어짐이라는 것이. 잊혀져야지만 낫는 병인 줄. 우리가 .. ★ 블로그 창고/시 읽는 하루 2009.11.28